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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유목민 Aug 04. 2022

아이와 산에 오르기는 항상 즐겁다

매일제주 162일차

아이에게 어승생악에 함께 가자는 약속을 받아놓았다.

왠일로 거부도 하지 않았고, 조건도 달지 않았다.

조건은 이제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초콜릿, 음료수, 과자

주문해둔 김밥을 두 줄 받으러가는 길에 남편에게 오감자를 사다달라고 이야기했다. 아이와 함께 편의점에 갔는데 오감자가 없어 가장 비슷한 감자깡으로 사왔다고 했다. 

"아빠가 감자 들어간 비슷한 것만 사야한데"

깨알같이 이르는 아이가 귀엽다. 

어승생악으로 출발하려고 했더니 아이가 갑자기 "엄마 그런데 초콜릿은?"이라고 묻는다. 남편은 과자를 샀으면 됐지 무슨 초콜릿이냐고 아이에게 면박을 준다. 하지만 초콜릿은 아이가 등산하는데 필수다. 비록 열걸음마다 하나씩 까먹기는 하지만 초콜릿과 함께 우리는 즐거워질 수 있다.

"무슨 소리! 태윤이와 등산할때는 꼭 초콜릿이 있어야지!"

운전하면서 코너를 돌아 편의점을 발견하고 ABC 초콜릿을 사다 주니 아이가 연신 웃는다. 


40분 운전해서 도착한 어승생악 주차장에서 1,800원을 내며 안내 표지판을 봤더니 '윗세오름 탐방길'이라고 쓰여있다. 

"어머, 이쪽으로도 윗세오름을 갈 수 있네?"라고 큰 소리로 중얼거리자 주자비를 받으시는 아주머니께서 "윗세오름 가시게요?"라고 묻는다. 

"아니요. 어승생악이요"라고 대답하자

"난.. 또.. 저 꼬맹이가 윗세오름에 간다는 줄 알았죠.."라며 아이를 쳐다본다.

"어머! 저 꼬맹이 6월에 윗세오름 다녀왔습니다.." 라고 하자 주차비를 받으시는 아주머니가 깜짝 놀라더니 아이에게 대단하다고 해준다. 

으쓱 거리는 초등 1학년이다.


아이가 갑자기 "나 어승생악 가기 싫어!"라고 한다. 

"응???"

이유는 없다. 괜한 투정. 

"어승생악이 쉽고 너무 좋았잖아. 태윤아. 아빠는 이곳에 한번도 못와봐서 엄마가 아빠를 보여주고 싶어서 같이 오자고 한거야.."라고 했더니

남편이 이내 얇밉게 받아친다

"그럴 필요 없는데? 나 안오고 싶었는데?"

아.. 정말 얇밉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니 산바람이 시원하다. 내가 사는 곳은 아침부터 뜨거운데, 이곳은 신선이 사는지 바람이 서늘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어승생악은 그리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윗세오름을 오른 아이에게 어승생악 정도는 껌이다. 가는 내내 시원하고 매미가 울고, 우리 식구들은 깔깔 웃으며 신나게 올라갔다. 감자깡을 아예 아이 손에 쥐여주고 먹고 싶은대로 먹으라고 했다. 얼마 안되서 오른 어승생악 정상.. 구름위에 있는 신선 같은 느낌, 서늘한 바람, 우리들. 모두 좋았다. 


셋이 나란히 앉았다.

남편이 말한다. 

"정말 좋네..."

"그치? 오길 잘했지? 내가 이거 정말 오빠 보여주고 싶어서 여기 꼭 오자고 한거야"

아까 나한테 핀잔을 들은 남편이 푸우같은 미소를 지으며, 

"고마워"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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