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앞두고 꺼내본 2년전 도서리뷰
이 글은 21년 12월에 '퇴사전보다 불안하지 않습니다'를 읽고 쓴 독후 에세이입니다.
2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보니 그 당시 제가 얼마나 불안했는지가 보이네요.
경험해보지도 않고 불안만 가지고 살다가
"내 이럴줄 알았지"하고 죽을 뻔 했네요.
이때는 제주도에 가는 걸 결정안했을 때인데,
이 글을 쓰고 1달 후에는 큰 결정을 하고 제주에 오고,
좋은 이웃을 만나고,
글을 계속 쓰고,
<독서의 기록>까지 출간하게 되었네요.
실은 퇴사를 많이 망설였습니다.
2년동안 내가 원할 때 떠날 수 있다는 아하!의 진리를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걸어보지 않은 길을 간다는 건 당연히 불안과 두려움이 따르지요. 이 책을 읽고 약간의 용기를 얻고, 2년 동안 제주에서의 삶을 열심히 퇴사를 준비하며 살 수 있었어요!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나는 회사에 미친 사람이었다. 회사일을 집에 싸메고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회사에서도 늦게까지 남아있고, 회사에서 출장을 가라고 하면 아이도 친정어머니께 맡기고 2-3달 장기출장을 다녀오기 일수였다.
3년 전에는 250일 가량을 미국 출장지에 있었다. 출장지에서는 새벽 6시에 출근해서 밤 12시까지 미친듯이 일했고, 나의 몸과 마음을 돌볼 줄 몰랐다. 그 결과로 발탁 부장이 되긴했지만, 딱 1주일간의 기쁨만 있었을 뿐...
출장지 암투와 본사에서의 정치판에 끼지 못했던 상황에서 작년 초 급격한 조직개편의 바람이 있었고, 아무리 열심히해도 굴러들어온 윗사람은 본인 사람들 위주로 과제를 짰다. 당연히 나의 업무는 아무리 열심히해도 티나지 않는 그런 일이되었다. 몇개월동안 친정어머니께 아이를 부탁하고 미국 출근시간에 맞춰 새벽6시에 출근해서 불살랐지만, 코로나와 함께 그럴 이유가 사라졌다.
그렇게 나는 하루하루 시들어갔고, 정신이 번쩍 든 어느 여름부터 미친듯이 책을 읽고,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나는 열정적인 사람이고, 그 열정이 회사일에서 '내가 즐거운 일'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 또한 내가 하는 업무에 윗사람이 관심 없는 것이 다행이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재택을 하면서 나의 워라벨 라이프가 유지가 되고 개인적으로 많은 일을 이룰 수 있었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된다는 핑계로 육아휴직을 일단 결심했다.
그리고 지난 주 있었던 조직개편의 결과로, 나는 육아휴직을 확정했다 (할말하앓). 확정하고 나니, 불안해졌다.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인 문제였다.
이런저런 걱정을 하고 있는 중에, "퇴사 전보다 불안하지 않습니다"를 읽었다. 결론은, 재테크 서적보다 나를 더 안심시키는 그런 책이었다.
"퇴사 전보다 불안하지 않습니다"는 30대 초반의 두 부부가 여의도 대기업을 때려치고 (통쾌하다) 500일간의 세계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다. (코로나로 인해 조금 여행을 일찍 꺼내긴했지만 이 두 부부의 일정은 신의 한수였음을 인정해야한다)
그런데 여행기는 아니다.
이 책은 세계여행기를 잔뜩 담은 책이 아니고, 세계여행을 계획하기전부터 했던 생각들, 불안한 마음들, 그리고 세계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에 대한 생각, 세계여행중의 본인의 생각들, 그리고 세계여행을 다녀와서의 생각들, 그리고 그 이후의 삶에 대해 진솔하게 담은 책이다.
내가 궁금해하는 부분이, 세계여행기가 아니라 정확히 이런 부분이었고, 작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공략해서 이 책을 쓴 듯 하다.
그렇다. 작가는 '퇴사 전보다 불안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고, 세계여행 후에 더 단단해진 모습이다. 어떤 것이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튼튼한 체력과 멋진 견문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p4 퇴사와 세계여행. 오래 고심해 내린 결정이었지만, 막상 해보니 별 게 아니었다. 전문 기술이 있거나 이직할 회사가 정해져야 회사를 나올 수 있는 줄 알았다. 세계여행은 노후가 보장될 만큼 돈을 충분히 벌어 놔야 가는 줄 알았다. (중략) 물론 믿을 구석이라고는 조금의 경력뿐. 월세가 나올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격증이 있는 전문직 출신도 아니다. 나를 움츠러들게 하는 것이 도처에 널려있지만 퇴사 전 보다 불안하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말하고 싶었다. 여행 후의 이야기는 형편없지 않다고.
p28 내 의지대로 되는 게 없는 회사를 다니는 게 더 불안했다. 조직에 속하면 능동보다는 수동에 가깝다. 상사를 선택할 수도 없다. 인사이동 소식이 들릴 때마다 가슴 졸여야 했고 혹여 원하지 않는 곳으로 이동될까 노심초사했다. (내 이야기인가 했다..)
이 판에 머무는 것도 불안한 것투성이었다.
회사를 나와 보니 불안이 있던 자리엔 오늘의 행복과 내일에 대한 기대가 들어왔다. 나에게 주어진 자유 시간에 무얼 하며 재미있게 보낼까 궁리하다보니 불안할 시간이 없었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움직이는 회사는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
30대든, 40대든 느끼는 것은 같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런 고민은 30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은퇴가 얼마남지 않은 직장인 40대도 하고 있는 고민이고,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다. 그러고보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는 순간부터 계속해서 이런 고민을 하면서 직장생활을 하고 세월은 갔던 것같다.
이제는 고민 그만하고 하고 싶은거 하면서 살라고 나 스스로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고민 할 만큼 했어.라고.
마이케 빈네무트라는 독일여자는 퀴즈쇼에서 1등을 하고 상금 50만 유로를 받아 1년동안 세계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퀴즈쇼 '누가 백만장자가 될 것인가'에 나와 상금을 받으면 뭘 하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한 달에 한 도시씩 1년 동안 열두 개 도시를 여행하고 싶어요"라고 했고 진짜 상금을 받아버렸다.
그녀는 나중에 그녀의 책 "나는 떠났다 그리고 자유를 배웠다"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충격 속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그건 바로 퀴즈쇼 상금을 타지 못했더라도 세계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는 거야.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떠날 수 있었던 거지. 그건 내 생애 최고의 아하! 경험이었어"
또 팀 페리스는 타이탄의 도구에서 이렇게 말한다. "장기간 여행을 떠났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굶어 죽고 팔자 좋은 배짱이라는 조롱을 당해야 한다면, 아마도 세상은 배가본더들 때문에 심각한 위기에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그런 일은 없었다. 오히려 세상은 배가본더들의 글과 책, 강연, 영상, 이야기에 더욱 귀 기울인다"
"퇴사 전보다 불안하지 않습니다"에는 작가 본인이 세계여행을 계획하면서 이 전에 세계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인터뷰내용을 실었다.
세계여행을 가고자 결심한 그녀에게 그들의 의견을 듣던 안듣던 '답정너'였을 것이나, 선구자들의 의견은 항상 들을만하다.
그 중에서 2년간 세계여행을 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책방을 운영한 작가분의 인터뷰내용 중에 나에게 도움이 된 부분이 있어서 소개해보고자 한다.
Q. 퇴사나 세계여행, 혹은 새로운 일을 고민 중인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뷔페에 가면 정말 다양한 음식이 있어요. 그 중에 우리는 보통 내가 아는 맛, 확실한 맛을 먼저 선택해요. 아니면 평소 먹어보고 싶었던 음식을 택한다거나. 그 모든 결정이 바로 우리 경험에서 나와요. 인생도 비슷한 것 같아요. 무엇이든 많이 해보고 경험해봐야지 잘 선택할 수 있어요. 남들이 다 좋다는 것들이 나와 맞지 않을 수 있어요. 그건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나의 인생과 그 선택이 맞지 않은 거죠. 그러니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아주 작은 거라도 해보세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많은 분들이 "돈이 있어야 경험을 하지!"라고 말하세요. 세상에는 돈과 상관없는 경험들이 굉장히 많아요. 모든 것을 돈과 결부 지어서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해요. 세상은 우리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무척 넓답니다!
지금 내가 가진 것을 살짝 놓아버리는 것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당장 휴직 후에 가정의 수입이 반 이상으로 줄어드는 것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이미 올해 한해 내년의 휴직을 위해서 예산을 구성해놓았으니 불안해 하지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고,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되었다.
20대의 마지막해, 취업해서 말레이시아 페낭으로 가면서도 '나는 늦었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늦은 시기도, 빠른 시기도 없다. 그냥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시기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