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 밤 늦게 도착했을 때,
택시가 우리를 데리고 들어 간 곳은
세린 레이크 (Serene Lake) 마을이었어요.
출입가드에서도 한 참 차를 운전하고 들어가는데,
상점도, 카페도, 마트도 아무것도 없는 곳이더라구요.
그냥 덩그러니 콘도와 고급 주택들만 있었어요.
막 생성된 단지로 고급 주택단지라는 건
다음 날 일어난 후 알게 되었습니다.
자정 쯤 잠이 들었지만,
치앙마이 시간으로 5시쯤 눈이 떠지더라구요. (한국 7시) 6시에 아이도 함께 일어났는데 아침으로 먹을 것도 없고 해서 일단 집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습니다.
오전 6시 조금 넘어서 그런가,
거리에 아무도 없어서 차도로 열심히 걸어갔습니다.
아이가 참여할 스포츠 캠프가 우리 숙소에서 걸어서 25분정도에 있는 걸 확인하고 그 방면으로 아이와 가볍게 걷기 시작했어요.
5분정도 걸었을까,
양쪽 도로에 한 마리씩 누워있는 누렁이들을 발견합니다. 순간 움찔한 아이와 저...
가만히 멈춘 후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하고 있는데 우리의 고민을 알아차린 건지 누렁이 한마리가 터덜터덜 저희를 향해 걸어오는게 아니겠어요?
순간 아이와 저는 등을 보이고 걸어온 방향으로 걸어갑니다. 너무 깨끗한 동네라 주변에 나뭇가지도 돌도 없더라구요. 아이가 뒤따라오는 개를 보고 달리려고 해서, 달리면 안된다고 손을 잡아 끌고는 저도 심장이 두근두근거렸습니다.
옆에 공사 중이라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가자 개가 우리를 따라오는 것을 멈추더라구요.
잠시 두려움을 가라앉히고 저희가 머물고 있는 숙소로 다시 걸어가서 경비원 분에게 파파고 번역기를 내밀었습니다.
"저기 개가 있어요"
경비원이 태국어로 된 번역을 보더니 재미있다는 듯 웃습니다.
"제가 이 빗자루를 가져가도 될까요?"
다시 파파고 번역기를 보여주었어요.
그랬더니 잠시만 기다리라는 제스처를 취하고, 60cm 가량의 멋지고 긴 막대기를 저에게 선물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태국어로 파파고 번역기 없이 말씀하셨죠.
"괜찮아요. 물지 않을거에요"
어떻게 알았냐구요?
저희에게는 바디랭귀지라는 툴이 있거든요.
아이와 저는 두려움이라는 괴물을 마주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요즘 '데일카네기의 자기관리론'을 듣고 있는데 두려움이란 나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걸 배웠거든요.
막대기를 들고, 아이와 손을 꼭 잡고, 아까 그곳으로 다시 갔어요. 똑같이 있었던 자리에 있던 개들이 이번에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누워있습니다.
아이에게 쳐다보지말라고 복화술로 이야기하고 아무렇지도 않고 막대기를 위아래로 흔들며 걸어갔더니 다가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고비를 넘기고,
세린 파크 마을 한 바퀴 (3.6km)를 돌았습니다.
어린 시절, 저희 동네에는 들개가 떼로 몰려다녔어요. 일요일 오전 일찍 걸어서 교회를 가는 시간이되면 항상 긴장을 했어요.
저 멀리 들개 떼가 보이면
한참을 돌아서 개들이 없는 쪽으로 피해다니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때 쯤에는 아무도 없는 골목을 가다가 삽살개 한마리가 무섭게 짖으며 저를 향해 달려왔는데, 울며불며 도망다니다가 막다른 골목에서 어떤 청년이 저를 구해주셨던 기억도 있어요.
그래서 처음 만나는 개들은 저에게 긴장과 두려움을 주는 존재입니다. 저희 마을에 있는 친구 일상기획자의 반려견인 아토를 처음 만났을 때도 바짝 긴장했던 제가 떠오르네요. 그 이후는 어떻게 되었느냐구요? 만나면 가장 반갑게 부르고 인사하고 쓰다듬어줍니다.
지난 겨울 치앙마이 여행을 조카와 다녀온 동생의 글에도 몰려있는 들개로 인해 두려웠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사람도 차도 보이지 않지만, 호수를 끼고 한바퀴를 돌면 3.6km인 세린레이크 마을은 달리기에 최적화 되어있는 마을인 건 알았는데 '들개'라는 복병을 만났습니다.
오늘 아침 달리가 가상 훈련은 포기했을까요?
아니요,
새벽 5시 49분, 어제 경비아저씨에게 선물받은 긴 막대기를 오른손에, 휴대폰을 왼손에 들고 뛰러나갔습니다. 개가 나타났던 곳 말고 반대쪽으로 먼저 달려볼까 했지만 어차피 두 바퀴는 돌아야하니 피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 멀리 누렁이가 달려오는게 보입니다. 그런데! 저를 향해 달려오던 누렁이가 저를 보더니 방향을 돌려 반대로 도망가는게 아니겠어요? 저의 막대기가 두려운가봅니다.
세린레이크 한 바퀴를 도는 동안 약 열 마리의 들개를 만났고, 한 마리도 저를 쫓아오지 않았어요. 저에게는 막대기가 들려있었기 때문이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아마 막대기를 들고 가지 않았더라도 그냥 모르는척 하고 달린다면 개들은 저에게 해꼬지를 하지는 않을거에요. 그런데 그 막대기라는 존재가 저에게는 심리적으로 상당히 든든한 힘이 되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나의 두려움 이기게 해 줄 나의 심리적인 막대기는 무엇일지 생각하게 하는 아침 러닝이었습니다.
두 바퀴째 돌 때 마지막으로 흰둥이가 저를 잠시 따라오기는 했지만 모르는 척 하고 달렸더니 어느 순간에 사라졌습니다. 7.96km 를 모두 마무리 짓고, 막대기에게 고마워하며 오늘 오전 달리기도 마쳤습니다.
치앙마이에서 첫 달리기 성공이에요.
여행을 와도 내가 있는 곳 어디에서든 달리고 쓰는 삶, 지금 여기에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