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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유목민 Jul 16. 2024

치앙마이에서 똥독에 오른다면

어제 처음으로 스포츠캠프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아이의 반응이 나쁘지 않아 안심하고 있었어요.

"엄마, 나 친구도 사겼다, 중국애야" 라고 

이야기하길래, 

"오전에 우리보다 먼저 왔던 이안 말이야?" 

그랬더니 맞데요. 점심도 같이 먹었데요.

이안은 영어를 잘 하는 것 같았는데, 저희 아이는 영알못입니다. 


캠프에 가서 주변을 둘러보니 옆에 아이들은 영어로 수다를 떨고, 영국식 발음을 너무 멋있게 하시는 코치님께서 아이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분위기였어요.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영어는 80 퍼센트가 자신감이라며 아이의 용기를 북돋아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통할리가 있나요.. 

아이는 상당히 기가 죽어있었습니다. 

영국식 발음을 훌륭하게 하시는 코치님께서 수업이 끝난 후 저에게 잠깐 이야기해주시길, 아이가 축구를 안하고 그냥 서 있길래, "너 혼자만 더운게 아니라 모두가 더우니 얼른 달리렴"이라고 말해주셨다고 해요. 

어색하게 웃으며 알겠다고 했죠. 

처음 가는 곳에서도 척척 어색하지 않게 잘 해주었으면 하는 건 엄마의 바람일 뿐입니다. 

그럴 때는 저를 떠올립니다. 아이건 어른이건 낯선 환경에서는 불안하고, 적응하기가 힘들죠. 극 I형인 저 또한 그렇습니다. 

아이의 회복탄력성을 믿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오늘 하루 따귀를 1분에 100번 맞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을 게 분명하기에 (전학가는 아이들이 느끼는 감정이래요)아이의 마음을 다독여주려고, 수업 끝난 후 아이가 좋아하는 마야몰에 가자고 했습니다.

아이는 당연히 신이나죠.

매일 저녁과 아침을 무얼 먹을지 걱정해야하는 건 한국에서나 여기서나 마찬가지인 것 같아 한숨을 좀 자주 쉬고 있지만, 장을 보며 당근과 사과도 구입하는 등 건강한 살아있는 식료품을 사려고 노력했어요.


아이가 로제라면볶음이 먹고 싶다고 하길래, 못이기는 척 사주면서도 아이를 기다리며 읽었던 "나를 살리는 습관, 죽이는 습관"에서 강조한 죽은음식을 먹이는 것 같아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구요.

(너무 짜서 반은 남겼습니다)


집에 와서 각자 본인의 할 일을 하고 넷플릭스 영화를 보고있던 아이가, 그냥 지나가듯이 묻습니다.


"엄마, 똥독이 오르면 아파?"

"똥을 제대로 안닦고 주변에 묻으면 독이 올라서 쓰라리고 아프겠지, 왜? 똥독이 오른 것 같아?"

"아니야...."

대답하는 아이의 말이 심상치 않습니다.

"똥독이 오르면 깨끗이 씻고, 빨리 치료해줘야하는데, 엄마가 한 번 볼까?"

아이가 못 이기는 척 팬티를 벗고,

중요한 부위의 아래를 보여주었습니다.

'아... 습진이네...'

아이의 허벅지가 겹치는 부분이 쓸려서 거뭇해졌습니다. 상당히 진행된 것 같은 느낌이었죠.


치앙마이에 도착한 다음 날 거의 2만보를 더운 치앙마이 시내를 함께 걸으며 아이가 힘들다고 했는데도 

엄마도 힘들다며, 계속 걷게 했는데, 그 모습이 오버랩되며 죄책감이.. 올라오더라구요.


어그적거리며 걷는 모습을 보았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도 했구요. 하지만 자책을 하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아이에게 이건 똥독이 아니라 습진이라는 거고, 아기가 여름에 땀이 날 때 기저귀를 오래 차고 있으면, 피부가 견디지 못하고, 습진이라는 게 나는 거라고 이야기해주며 안심시켜주었습니다. 

다시 한번 씻기고 보습 크림을 발라주었어요. 

제 무릎을 비고 자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합니다.

발진, 습진이 같이 온 듯 했어요

(차이는 잘 모르지만, 생긴 모양이 좀 다릅니다)

아기때 발랐던 비판텐 연고가 생각나서 그랩에서 알아보았습니다.

오토바이로 40분만에 배달되는 비용이 총 235 바트, 1만원도 안되더라구요.

얼른 주문했더니, 약국에서 픽업하는 시간부터 숙소에 도착하는시간까지 정확하게 알려줍니다.

정말 좋은 세상이라고 해야하나요.





번역도 자동으로 해주고, 집 앞까지 배달되는 서비스가 놀랍습니다.

아이를 깨워 다시 씻기고,

비판텐 연고를 발라주고 통풍이 잘 되게 두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초저녁잠을 자다가 일어난 아이가 

스포츠 캠프를 3주에서 2주로 줄이고, 

아트 캠프를 1주에서 2주로 늘리라며 요구합니다. 

이게 갑자기 무슨 상황이지? 라며 당황한 저...

환불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해도

막무가내로 버티기 들어갑니다.

이럴 때 잠투정임을 파악하고 빨리 재웠어야했는데,

아이와 대치를 하며

서로 울다가 끌어안고 자는 것으로

상황은 종료되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영어도 못알아듣고 말도 못하는데,

영어로 수업하는 환경,

푹푹치고 습한 날씨,

뛰기만해도 쓰라리고 아픈 허벅지 안쪽의

습진으로 축구도 제대로 못했을꺼고,

가장 힘든 건 바로 첫 날...이라는 특수성이었죠.

저도 어제는 긴장했는지

학창시절

첫 학기가 시작할때마다 느꼈던 다리의 통증이

올라왔었거든요.

아침에 일어나서,

비판텐을 발라 준 곳을 보니 많이 나았는데

그 옆에 엄청난 땀띠가 올라왔습니다. 

(이건 좀 더 지켜보기로 합니다)


이제는 아프지 않다고 엄지 척 하는 아이에게

체육 캠프가 끝나는 날,

얼마 전 치앙마이에 생긴 큰 쇼핑몰에 입점한

'두끼'에 가자고 했더니

당장 가자고합니다. 

잠투정이 맞았나봅니다.


둘이 장난치고 웃으며

스포츠센터까지 걸어가는 길,

이 또한 추억이 되겠지.. 

감사한 순간을 느낍니다.



입구에서 어제 사귄 중국친구 이안을 만나자 마자

"엄마 안녕!"이라며

쿨하게 친구에게 뛰어갑니다.

친구가 영어로 이야기하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는 

연신 웃기만 하는데,

아... 웃픈 상황이네요.

진작에 영어공부를 해둘걸 그랬다고

또 욕심부리지만,

지금도 잘 하고 있으니까요. 



PS, 오늘 새벽도 달리면서 개를 만났는데 이번엔 개떼들을 만나서 뒤돌아 모르는 척 걸어갔습니다. 있었던 이야기를 쓰니 댓글에 블로그 이웃분들이 경험을 나눠주시는게 좋아서, 꿈유 in 치앙마이의 단상들을 이렇게 끄적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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