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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죽박죽 세계여행 3화) 별이 빛나는 밤에 이집트로

by 꿈꾸는 유목민

이스라엘에서 한달간의 현대 히브리어 연수와 여행을 마치고 이집트로 넘어갔다.


이집트 여행은 두가지 옵션이 있었는데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에서만 계속 있거나, 이집트 끝에 있는 람세스 신전까지 가거나.


나는 이스라엘 여행을 마치며 이집트의 람세스 신전까지 가겠다며 그당시 베스트셀러였던 람세스를 시리즈로 다 읽었는데, 시간이 갈 수록, 빨리 한국에 돌아가고 싶었다. 이집트 남부까지 내려갔다오면 귀국이 일주일정도 늦어진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몇몇 사람들과 이집트 카이로만 몇일 여행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드디어 이집트로 가는 날이다. 이스라엘에서 이집트로 넘어가려면 이집트 비자가 필요했는데, 이는 예루살렘에서 받을 수 있다.


영어를 잘 하는 동기 두 명이 (나는 그 당시까지도 영어를 못한다) 예루살렘에서 이집트 비자를 가져와야 우리는 이스라엘의 국경을 넘어 이집트로 갈 수 있었다. 그런데 비자를 가지러간 대사관에 간 동기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는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딘지 기억나진 않지만, 그들을 기다리면서 이스라엘 군인과 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아무나 붙들고 사진을 찍었다)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린다.


어찌해서 알게 된 사유는 그 날 그 시간에 예루살렘 버스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일어난 것이다. 우리는 너무 놀랐고 그 동기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예루살렘에서의 이런 테러는 빈번하다고 하니, 살만한 곳은 아닌 듯 했다.


정말 다행히 동기들은 돌아왔고, 우리는 이집트 국경 근처에 밤 늦게 도착했다.


일정상 우리는 이집트에서 시내산에 오르기로 했는데, 시내산은 모세가 10계명을 받은 곳으로 유명해서 성지 순례에서 빠지지 않는 곳이다.원래는 시내산 일정이 없었다가, 키부츠에 같이 갔던 홀리하신 선배님들 몇분이 모세가 10계명을 받은 시내산은 꼭 가야한다며 우겼고, 다들 팽팽이 맞서다가 결국엔, 시내산을 가기로 했다.


나는 날나리 기독교인이기도 했지만, 어렸을 때 교회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모세가 10계명을 받은 곳이라니, 의미 있는 곳을 방문하는 것 같아 들떠 있었다.


이집트 국경에서 시내산까지는 약 2-3시간정도 택시를 타고 가야 했다. 동기 중 영어를 잘 하는 두명이 이때도 택시기사들과 네고를 시작했다. 우리는 한국에서부터 이집트 사람들은 바가지를 잘 씌우니 무조건 가격을 후려쳐야 한다고 들었기때문에 이를 성실히 이행 했다.


택시기사들도 만만치 않다. 어느 가격이하로는 절대 안된다고 한다.


우리 모두는 한달 간의 짐이 들어있는 무거운 케리어를 끌고 (나는 그당시 이민가방을 들고 갔다...) 다시 이스라엘 국경쪽으로 움직였다, 아니 움직이는 척을 했다.


결국, 우리의 승! 우리가 원하는대로 택시비를 깎을 수 있었고, 우리는 택시를 나눠타고 시내산으로 향했다. 시내산 정상에서 일출을 봐야하니 새벽 3시까지는 시내산 자락에 도착해야한다.


2시간정도 지났을까, 밤이 깊었고 우리는 좀 쉬고 가자고 하여, 택시에서 내려 쉬게 되었다. 그때의 밤하늘은 잊을 수 없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니 어쩌면 앞으로도 보지 못할 그런 광경이었다. 하늘의 별은 틈도 없이 빼곡히 차 있었고, 너무 아름다웠다.


나는 순간 너무 감동해서, 이스라엘 출국 2개월 전 혼자 부석사 무량수전에 여행갔다가 우연히 만난, 나의 남자친구가 된 연하의 연인으로부터 선물받은 머라이어 캐리의 카세트 테이프를 택시기사에게 건네주며 틀어달라고 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머라이어 캐리 카세트 테이프는 틀자마자 엉망으로 엉키고 말았다. 나의 연하의 연인이 준 머라이어 캐리의 카세트 테이프는 그렇게 운명을 다 했다.


드디어, 시내산 밑에 도착, 새벽 3시쯤 도착한 우리는 아무도 손전등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다행히도 많은 세계의 배낭객들이 손전등을 들고 시내산으로 향한다. 우리는 망설일 틈 없이 그들의 빠른 걸음을 따라 쉬지 않고 올라갔다. 중간에 낙타꾼들이 “낙타 5천원” “낙타 1만원” (한국말로) 이러면서 우리를 유혹했다. 그 중에서 한명은 아마 낙타를 타고 올라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해가 뜨기 직전의 시내산 정상, 우리는 함께 바위 위에 앉았고 저 멀리서 뜨는 해를 바라보며 ‘시온의 영광이’라는 찬송가를 불렀다. (아... 생각해보면, 너무 오글거린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너무도 감동한 인생 장면..



그렇게 내려온 우리는 카이로 숙소로 향했다.


몇몇은 이집트 남부 여행을 떠났고 우리는 카이로 시내에서 스핑크스와 피라미드를 구경하러 갔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앞에는 KFC와 맥도널드가 있었다. 그건 정말 실망스러웠다. 세계유산이 있는 곳 바로 앞에, 패스트푸드 점이라니...




하지만 더 큰 아쉬움이 있었다.


이집트 여행에서 가장 후회하는 것 두가지 중에 하나는 이집트 남부 여행을 하지 않은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피라미드 안에 들어가봤자 어두컴컴하고 습하다는 이야기만 듣고, 입장료가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 (여우의 신포도) 다시 가지 못할 이집트의 여행에서 놓친 것 중에 하나이다.


그 당시 생각나는 것은 이집트는 훌륭하고 많은 문화유적을 가졌지만, 이를 제대로 관리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박물관에 가보면 그냥 유물을 던져 놨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집트에서의 둘째날은 시장에 가는 날이다. 시장에 갈 때나 거리를 걸을 때, 동양인들이 너무 신기했던 이집트 사람들의 눈은 모두 우리를 따라서 움직였고, 지나갈때마다 인사를 하거나, 놀리거나하며 지나갔다.


이집트에서 조심해야할 점은, 신기한걸 보여준다고 하면 따라가지 않는것이었다. 강매를 당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 그리고 무조건 깎으라는 것. 나는 그당시 향수 원액과 향수 원액을 담을 조그마한 호리병들을 열심히 네고 했고, 많이 구입해서 한국으로 가져왔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이집트에 있는 몇일동안, 우리는 너는 낙타 몇마리? 나는 낙타 몇마리.. 이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무슨말이냐고?


이집트는 사막이라 낙타가 재산목록에 들어가고, 결혼을 할때 남자들은 지참금으로 여자 집에 낙타를 주고 여자를 데려간다고 한다. 낙타를 많이 받는 여자일수록 부자에게 시집을 간다는 뜻이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같이 간 여자 동기들이 거리를 다닐때면, 거리에서 종종 “Carmel Ten!!” “Carmel Hundred!” 이렇게 말하는 이집트 남자들이 있었는데, 물론 장난이겠지만, 낙타 한마리보다는 낙타 백마리가 좋은 거니까... 그게 이야기꺼리가 되는 그런 여행이었다.


부석사 무량수전에서 만난 나의 연하 연인은 어떻게 되었냐고?


너무 좋은 사람이었는데, 이스라엘 다녀와서 2주일만에 헤어졌다. Out of sight, Out of mind.. 나중에 후회하고 겨울 잠실 바닥에서 한참을 기다리며, 테이프 파는 리어커에서 흘러나오는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날'을 들었던 기억,


그래서 이스라엘과 과거의 연인은 항상 셋트로 기억이난다.


세월이 흐르니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나이가 들면 추억으로 먹고 산다는데, 기록을 시작한 요즘 그 말이 더 와닿는다


꿈꾸는 유목민

세계여행의 기록

이집트 여행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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