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이 모든게 꿈이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눈을 뜬 아침. 내 세상은 바뀌었지만 야속한 세상은 그대로였다. 출근길 햇살은 왜 그리 따스하고 하늘은 왜 그리 맑은지.
"나 결혼한다"
회사 팀원들에게 가장 먼저 알렸다.
"사고쳤어?"
평소에도 친하게 지내던 동료는 장난스럽게 받아쳤다.
"응 어제 보니까 두 줄이더라"
그렇게 말하며, 임테기 사진을 보여줬다
"...진짜야?"
장난이 아닌걸 직감한 동기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퍼져나갔다.
"응, 나 이렇게 가게됐어"
"와..평소에 얘기하던 그대로 됐네"
그랬다, 사실 주변에 나는 이미 내가 결혼을 하게 될 시나리오에 대해 얘기했었다.
"난 사고쳐서 결혼 할 수밖에 없어, 정상적으로 결혼 준비 과정을 밟으면 짜증나서 포기 할 거거든"
말이 씨가 된다는게, 이런건가 싶었다.
그렇게 오후 일찍 퇴근하고 그녀와 병원부터 갔다.
"괜찮겠지?"
병원에서 근무하는 그녀지만 본인이 진찰을 받는것에는 익숙하지 않아보이는 그녀였다.
"마스크 끼세요"
병원을 갈 일이 없던 나는 병원에선 여전히 마스크를 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후다닥 약국에서 마스크를 사서 온 나는 그녀와 접수하러 원무과로 가면서 전 날의 대화에 대해 생각했다.
"같이 가야 하는거야?
병원을 좋아하지 않고, 평일에 병원을 가야 한다는게 부담스러웠던 나는 전날 무신경하게 병원에 혼자갔다오면 안되겠냐고 그녀에게 물었다.
"젊은 여자 혼자 산부인과 가는게 얼마나 눈치 보이는데...같이 가줘야 되는거야"
그녀의 말이 잘 이해가 안되는 나였지만, 책임감으로 같이 가기로 했었다.
병원은 사람으로 가득이었다. 20대로 보이는 사람들부터 30대까지, 앉을 자릴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 남자가 보호자로 와있었다.
"그렇네 .. 남편이랑 다 같이 오네"
전날 무신경하게 말한게 미안해지는 나였다.
초조히 순번을 기다리며,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우리는 확실히 어린 편이었다.
"XXX 님"
우리의 차례가 왔다.
"축하해요, 4주정도 됐네요"
그 말을 들었던 우리는 그 축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서로를 봤다.
"아직은 안정기가 아니니까, 조심하셔야 되요"
12주차까지는 안정기가 아니니, 운동도 자제해야 한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을 새기며 나왔다.
"와..애기 대단하네. 안정기가 아닌데 그걸 다 버틴거야?
나는 아기의 생명력에 놀랐다. 그도 그럴것이 그녀는 임신 사실을 모르던 몇주간, 흠뻑쇼에서 4시간 동안 뛰고, 친구랑 새벽 4시까지 술먹고 노래방까지 가서 춤추고 놀았다. 그럼에도 찰싹 잘 붙어있던 아기가 대단했다.
"확실해졌네"
분명히 축복받을 일인데, 행복해야 할 상황인데,
걱정이 앞서는 마음은 어쩔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