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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뱅 Nov 28. 2023

아빠, 할아버지 됐어

아버지가 된 아들과 할아버지가 된 아버지

"나..어떡해?"

장난이라기엔, 너무 리얼했던 표정과 떨리는 목소리에 가슴이 철렁하고 무너졌다.

"두 줄이야...?"

그녀의 손에 있던 임테기를 확인한 나는 아찔함을 느꼈다. 다시 확인할 여지도 주지않는 선명한 두  줄 이었다.

"나 어떡해? 나 엄마한테 뭐라고 말해?"

어쩔 줄 몰라하며 벌벌 떠는 그녀를 두고 뭐라도 해야 했지만, 나 역시 머리가 하얬다.


27살의 회사 기숙사에서 생활 중이었던 어린 그녀, 31살의 월세방에서 제대로 된 재산 한 푼 없는 나. 몸만 큰 어린이들에게 임신은 너무 큰 일이었다.


"일단 진정하자, 앉아서 잠깐 생각 좀 해보자"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횡설수설 했다. 나까지 이성을 잃으면, 안 될거 같았다.


"생각했던 것 보단 빠르게 찾아왔네...뭐 결국엔 일어났을 일이잖아? 순서가 바뀐거지.."

저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을 내뱉었다.


"오빠는 결혼 생각 없잖아.. 한번도 그런 얘기 안 했으면서..."

맞다. 난 그녀에게 결혼과 관련된 얘길 한번도 안 했다. 사귄지 반년 밖에 안됐는데, 무슨 결혼 얘길 할까.


"얘긴 안 했어도 생각은 계속하고 있었어.타이밍이 좀 빨랐던거야. 어차피 나랑 결혼하고 싶어했잖아? 나랑 헤어질거였어?아니잖아"

생각할 틈도 주지않고 내뱉었다.


그렇게 30분정도 내 생각을 추스리기도 전에 그녀를 달래며 진정시키고, 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어~~"

평소처럼 내 전화를 받은 아버지. 그 목소리에 심장이 덜컥였다.


"아빠.. 놀라지 말고 들어..아빠, 할아버지 됐어"

떨리고 무서운 마음을 누르며 애써 가볍게 안부를 얘기하듯 전한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아버지는 최고의 방식으로 화답해주었다.


"...하하하하하, 크크크큭 너 그럴 줄 알았다 이놈아"

걱정하던 내 맘을 보듬어주는 목소리에 안도감을 느끼고, 어머니에게 같은 소식을 전했다.

"야!! 넌!!! 그렇게 조심하라고 했는데.."

예상했던 역정의 목소리 였지만, 어색한 침묵보단 안도감을 주는 분노였다.

 

부모님이 내 부모님이라 감사했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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