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후 7년 넘게 우린 아이가 없었다. 별도의 시술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정말 잘 지키며 조심했을 뿐이다.
아내는 없는 형편에 아이를 갖기는 싫다 했다. 아이를 위해 무엇인가를 살 때마다 돈 고민을 할 수는 없지 않겠냐며 내게 반문했다. 나 또한 아내의 의견에 동의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해주지 못하는 것만큼 아이에게 미안한 일도 없으리라 판단했다.
우린 아이가 싫어서가 아니라 가난이 소중한 아이까지 옭아매는 것을 지켜볼 수 없었다. 아이가 태어나서 자라는 데까지 상당한 노력뿐만 아니라 금전적 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함은 교사부부인 우리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교실에서 지켜보는 아이마다 천차만별이나 정서적 그리고 물리적 지원을 부모로부터 충분하게 받고 자란 아이들과 어느 쪽이라도 결핍이 있는 아이들의 차이는 분명 있다. 이를 를 아내나 나는 양육에 필요한 경제력을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새 집을 분양받고 7천만 원가량의 빚을 3년 만에 모두 처리한 뒤 우린 소중한 아이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