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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연애를!

믿기지 않는 일

by Aheajigi

제대를 했고 침울했다. 우리 집 가세는 폭싹 기울었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했고 복학 때까지 막노동과 공장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렇게 모은 돈이라도 온전히 쥐었으면 복학 이후 생활이 파리 목숨처럼 불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복학에 꼭 필요한 학비 외에 남은 돈은 생활비에 보탰다.


내게 복학은 쉬었던 머리를 돌려야 하는 것보다 돈과의 전쟁이었다. 생활비, 학비를 모두 마련해야 다음 학기 수업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공교재 일부는 선배들로부터 얻거나 일주일 필요치 만큼 복사해서 썼다. 수업이 끝나면 아르바이트로 바빴고 공강 시간에는 부족한 공부를 보충했다. 안 그래도 좋지 않은 머리, 일이 큰 비중을 차지하니 학점은 좋을 리가 없었다. 겨우 3점대를 유지하며 학교 생활을 이어갔다.


복학생은 후배들과 수업을 들어야 한다. 3년 터울이 사회에서는 크지 않으나 대학생들에게는 삼촌 내지는 아저씨 뻘로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호칭을 깍듯하게 선배님으로 부르면서 말이다.


그렇게 일과 학점 유지하기에 바쁜 나날들이 이어졌고 어떤 이슈로 시위에 나서게 되었다. 삼촌이나 아저씨 대접에서 이번에는 보호자 역할로 바뀌었다. 이건 지도교수님의 특별한 당부이기도 했다.

잘 챙기려 했고 행여나 다치지 않게 신경을 썼다. 아프다면 약을 사다 날랐고 배가 고프다 해서 먹을 것을 사러 뛰어다녔다. 차가운 강당 바닥에서 쪽잠을 자길래 천 쪼가리를 찾아 덮어주면서 말이다.

이것이 연애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지금의 아내는 이때 감기약을 챙겨 주었던 같은 과 후배다. 계속 신경 쓰고 도와주다가 스며들듯 연애로 이어졌다.

'사귀자는 말을 했었나?'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것일 수도 있다.(기억을 못 해도 한소리 들을 이야기고 사실이라면 더 큰 일이다. 난감하네.)


후배는 그때 이야기고 20년 넘게 살다 보니 이젠 우정으로 뭉친 동료다. 공손하게 선배님 했던 아내가 가끔 생각이 나긴 한다. 이젠 아내의 자기야 소리가 들리면 빠르게 반응해야 한다. 아내가 군대 고참 같은 자위를 누리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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