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역할
먼저 살아본들 삶을 다 알지는 못한다. 인생은 본인이 걸어온 길 밖에 알 방법은 없다. 누구나 삶에 대한 식견의 폭이 그리 넓을 수 없는 태생적 이유다.
그래서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취하는 스탠스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나처럼 살아라.
아니면 나처럼 살지 말아라.
욕심에서 비롯된 태도다. 더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녀를 밀어붙인다. 자녀의 의사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살아본 부모 본인의 삶을 전부라 확고하게 믿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녀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는 최고의 방법이다. 당신들이 낳아 길렀다 치더라도 자녀는 당신들의 분신이 절대 아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엄연한 독립적인 개체일 뿐이다. 자신과 자녀를 동일시하는 이 망상의 최대 피해자는 그리 애지중지하는 자녀이다.
이런 것도 하면 좋고 저런 것도 하면 좋다며 정신없이 아이들을 사교육으로 끌고 다닌다. 그리 좋은 것이라면 당신들이나 하면 될 것을 기어코 어린아이만 파김치를 만들어 버린다.
자는 시간 빼고 학교와 학원이 전부인 삶이 화창하리라 보는가? 먹구름 같은 부모 욕심이 아이들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암흑으로 만든다.
욕심 많은 부모들에게 잘 사는 삶은 부와 권력을 움켜쥠이다. 가졌다면 지키기 위해, 가지지 못했다면 빼앗기 위해 부모는 아이를 전사로 만들고픈 것이다.
더 많이 웃고 기뻐하는 삶보다는 남보다 앞서야만 한다. 그 앞서는 삶을 살면 행복은 당연히 따라온다 믿으면서 말이다.
만일 이런 당신들의 인생 가설이 맞다면 세상 가장 행복한 이는 빈살만이나 트럼프이어야 한다. 최고의 부자와 최고의 권력가는 매일매일 세상 최상의 행복을 누리고 있을까?
평범하면 행복도 중간이고 가난하면 얼굴에 웃음끼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일까?
누구도 확언하지 못하는 질문에 마치 정답이 있다 믿나 보다.
오늘 웃지 못하는 삶이라면 내일도 그리고 모레도 웃을 수 없다. 그 누구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삶 속에서 참고 견디기만 하라는 것이 과연 현명한 처사일까 싶다.
젊어서는 앞을 보고 살지만 늙으면 뒤돌아 추억을 먹으며 버티는 게 인생이다. 자녀에 대한 과욕은 당신들의 자녀가 되새김질할 추억을 잔인하게 찢는 일임을 알았으면 싶다.
소를 물가까지 데려가는 것은 가능하나 먹고 안 먹고는 소의 의지에 달려있기 마련이다. 물을 먹이려 억지로 소 입을 벌려 물을 넣는 일은 물고문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당신들이 지금 행하는 일이 자녀를 위해서 인지 아니면 자녀를 고문하는 것인지 깊이 숙고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