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이 아닌 불안함
아내는 개학을 앞두고 자다 깨다를 반복 한다. 난 길게 자본 일이 언젠가 싶다. 잠을 자는 일이 뒤틀리니 컨디션은 늘 엉망이다.
개학이 설렐 때도 있었다. 근래 들어 그런 일은 전혀 없다.
가르침은 수업 시간으로 한정하고 잔소리는 철저하게 배제해야 한다.
독특한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 학생에게 어떤 문제를 초래할지 예측 가능하지만, 학부모가 먼저 물어오기 전까지 절대로 나서서 말하지 못한다. 설령 물어온다 해도 액면 그대로 말하지는 못한다. 이건 다분히 오해의 소지가 크다.
학생은 내 자식이 아니다. 가정마다 양육방식이 있으니 그 영역은 내가 간섭할 권한도 이유도 없다. 상이한 가정교육에서 비롯된 학교 내 문제는 절차대로 따를 뿐 조율하거나 중재하지 못하는 이유다. 예전 같으면 손을 뻗칠 사안이지만 요즘은 이런 참견은 아동학대로 신고받기 딱 좋은 먹잇감이다.
올해도 난 학생들과 190일 제한적 인연임을 강조할 것이다. 시일이 지나면 우린 모르는 사람으로 지내자고 말이다.
학부모에게는 난 가르치는 것이 업인 직종이니 생활 영역에서 비롯되는 문제는 매뉴얼에 입각해서 처리함을 통보할 것이다.
아무 일 없이 올 한 해도 무던히 넘어갔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