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아우라

갈라서기 그림자

by Aheajigi


"몇 개의 사례로 비슷한 대상 모두가 그럴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긴 하다."

상황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유연하게 넘어가는 이들도 있고 나처럼 허둥대는 이들도 있다. 간혹 사건이 대처능력을 넘어서는 경우 어찌할 바를 몰라 주저앉기도 한다.


한배에서 몇 분 차를 두고 나온 쌍둥이도 싸운다. 이들의 유전자는 거의 일치함에도 생각은 상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모르는 두 사람이 가족이란 울타리를 만든다는 것이 생각만큼 만만한 일이 아니다. 좋아서 만났다 해도 살다 보면 성격차를 느낄 수밖에는 없다. 이를 넘길 수도 있고 그럴 수준이 아닌 경우도 있다. 가족에게 밀려든 삶의 역경을 마주했을 때 반응하는 자세 또한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함께할 수 없다는 판단이 갈라서기라는 어려운 선택에 이를 수도 있다. 여기까지는 어른들의 이야기이다.


"내겐 이 난감한 상황이 누구 탓인가가 중요한게 아니다."

갈등과 갈라서기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상황에서 자녀는 절대 고려 대상이 될 수 없다. 나름 양육자는 신경 쓴다 하겠지만 자녀의 상처를 완벽하기 피한 이들을 아쉽게도 본 적이 없다.

대놓고 속시원히 자녀가 부모의 이혼에 대해 말한다면 차라리 낳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울부짖거나 조용히 마음속으로 상처를 후벼 파는 일뿐이다. 그렇게 갈라서기 그림자는 아이들의 어두운 아우라로 고스란히 남는다.


어른은 그들만의 피치 못할 사정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고 어려운 선택을 한 것임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럼에도 난 눈앞에 그늘 가득 드리운 표정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는 그네들의 자녀만 보일뿐이다.

누가 잘했고 잘못했고의 문제는 어른 몫이다. 결혼은 분명 본인들 선택이었기에 책임 또한 그들의 업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부모를 고를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고스란히 이혼의 피해만 떠안을 뿐이다.


교실에서 대면하는 한부모 가정의 모든 아이들에 아우라가 잿빛은 아니다. 서두에 말했듯 의연하게 넘기면서 겉으로는 구김살 없이 지내는 아이들도 분명 있기는 하다.

올해는 첫날부터 걱정스럽게만 보이는 아이들이 있다. 비워진 반을 채울 수 있는 방책은 나에게 없다.

웃는 일들이 한 해 동안 많아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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