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이라 불리는 나이가 되어서도 나에 대한 외부의 평가는 호불호가 확실하다. 둥글둥글 살아야 한다는데 그건 참 쉽지 않다. 이런 양극을 치닫는 평가를 나 또한 모르지 않는다.
불호를 없애겠다고 노력을 안 했던 것은 아니다. 즐기지도 않는 술을 마시고 이명에 밤잠을 설치면서도 노래방까지 따라갔다. 무한 반복에 가까운 헛소리와 저급한 농담에 추임새를 넣는 등 영혼 없는 일들을 안 해본 건 아니다.
"모두를 맞출 수는 없다."
심신이 피폐해지면서까지 이런 게 필요한 직업군도 아닌데 난 왜이러나 싶었다. 살면서 타인으로부터 부정적 평가를 받지 않는 것이 물론 가능한 이들도 있기는 할 것이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기 위해선 아마도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은 내공이 필요할 듯싶다. 유리 몸과 간장 종지 크기의 멘탈을 가진 나에게는 절대 불가능한 일임을 알았다.
맞지 않으면 피했고 애써 맞는 사람을 찾으려 노력하지도 않았다. 홀로 산길을 아무 생각 없이 걷는 시간이 평온했다. 사람과 어울릴 때는 적당한 수준의 맞장구만 칠뿐 자리를 주도하거나 앞도 하려는 되지도 않는 노력에 에너지를 허비하지는 않아 왔다.
그래서인지 난 종종 누군가의 뒷담화 대상이 되곤 하나보다. 나중에 알게 되었을 때 불쾌함이 밀려오는 건 지금도 어떻게 넘겨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건 지극히 그쪽의 주관이기에 내가 관여할 사안이 아님에도 끓어오르는 분노를 식히는데 적잖은 시간이 소요되니 말이다.
"그러려니"
대부분 만나는 사람들은 직업과 연관된 이들이다. 하여 그들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생각은 다를 수 있고 좋고 싫음에 꼭 이유가 있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날 괜찮게 평가하면 고마운 일이고 그와 정반대라면 그 또한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넘긴다. 왜 싫어할까에 대한 원인을 찾지 않는다. 그 끝은 상대에 대한 원망이거나 자기바하 밖에 없음을 안다.
외부의 평가는 순간이다. 내가 법과 규칙의 테두리 안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거리낄 것은 없지 싶다.
나에게 연락을 해오는 상당수는 도와달라는 것이 주를 이룬다. 가까운 이들이라면 성의를 보이나 내 험담에 열을 올리면서도 손을 내미는 이들에게는 매몰차게 거절하지는 않고 회피한다.
이렇게 관계를 줄여가니 시간에 여유가 생긴다. 생각은 많았지만, 정리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이렇게 글로 정리하고 있으니 말이다. 오히려 지금은 이게 더 편한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