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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eajigi May 11. 2023

보살필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

분교의 짠한 추억


 초등학생 달랑 3명인 분교에서 근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만큼 아이들을 보살폈던 때는 없었던듯 싶다.

 난 보살핌이 흘러넘치는 휴머니스트가 아님에도 상황은 아이를 보살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갔다.


 1학년 남자 아이는 등장부터 남달랐다. 잔뜩 손을 대서 얼핏봐서는 저게 무슨 차인지 구분하기 힘든 승용차가 요란한 엔진음을 내며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아빠와 아이는 나란히 금반지 양손에 4개, 금목걸이를 했다. 힙하다기 보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우리 집에 7억 있다."를 입에 달고 사는 아이가 처음에는 신기했다. 그러다가 "이모가 또 바뀌었어요."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 자세한 내막을 조심스레 물었다. 아빠와 동거하는 여자가 한달이 멀다하고 계속 바뀌고 있었던 것이었다.


 4학년 여자 아이는 얼핏 보았을때 가장 괜찮다 생각했다. 학습도 괜찮았고 동생과 오빠를 잘 챙겼다. 교실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이 아이를 불렀다. 아이는 기 이야기는 잘 하지 않았다. 소심한 성격이라 그런가 했다. 어느날 아이가 들어오는데 아우라가 어둡다. 고개를 숙이고 있기에 무슨 일이 있겠거니 했다. 그러다 아이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양쪽 눈주위가 시커멓게 변해있었기 때문이다. 연필을 잔뜩 묻혀 장난친 것이라면 좋으련만 이건 그게 아니었다. 아이를 조용히 교무실로 불렀고 차분하게 물었다. 처음에는 이야기를 하지 않더니 아빠가 그랬단다. 혹시 엄마도 알고 계신지 물었더니 엄마도 같이 폭력 피해를 입었단다. 본교 관리자에게 상황을 전달했지만 가만히 있으란다. 그때는 아동학대가 가정교육으로 포장되었던 시기라 그랬다. 어찌해야하나 고민이 많아졌다. 아이 엄마와 통화를 했더니 자신이 알아서 하시겠다기에 더 나서지는 못했다.


 5학년 남자 아이는 첫눈에도 걱정이 앞섰다. 자폐라는 장애를 갖고 있어 학습이나 대인관계에 있어 발전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었다. 먹는 것 말고는 적극적인 것도 없었다. 1학년 아이가 코를 틀어막고 형아 냄새난다기에 언제 목욕을 했는지 물었다. "작년~" 거기까지 듣고 재빨리 숙직실로 달려가 커다란 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았다. 학교가 끝나고 잠시 남으라 한 뒤 아이를 숙직실로 들여보내 씼으라 했다. 연중 행사로 목욕을 하던 아이가 제대로 씼을리는 없었다. 때밀이 수건을 서둘러 사와 아이 몸을 닦아 주었다. 투명했던 물이 회색빛깔로 바뀌는 것을 보면서 한편 후련했고 마음이 짠했다. 폐교 관련 서명을 받으로 가서 아이의 가정 형편을 알았다. 살림살이가 남루한 문제 보다는 대청마루 밑에 가득한 술명과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욕지거리에 혀를 내둘렀다.


 본교 행정실장에게 분교 아이들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니 학생들에게 사용하는 돈은 전혀 문제될게 없다고 했다. 학교 관리자들도 이 부분에 있어서는 별다른 의견차가 없어 아이들 케어하는데 예산을 사용하기로 했다. 분교 아이들 3명을 위한 운동부를 만들어 매일 간식을 주었다. 철이 바뀔때마다 옷과 신발도 구입해서 제공했다. 현장학습도 전액 분교 예산으로 사용해서 돈이 들어갈 일이 없었다. 수학여행 비용까지 학교 예산으로 내는 것은 무리다 싶어 그것은 내 사비로 지출했지만, 그 조차도 학교 운영위원들의 도움으로 충당되었다. 고구마도 키워서 간식으로 구워주고 점심 급식 반찬이 먹을게 없다 싶으면 기사에게 개인 사비를 건네고 삼겹살을 사달라 부탁해서 구워주기도 했다.


 달랑 3명뿐인 아이들의 인생사가 너무도 굴곡져서 못본척 할 수가 없었다. 이제 다들 20대 일텐데 잘들 지내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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