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건건 자녀의 일에 나서는 보호자들이 있다. 자녀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라 여길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의 밑바탕에는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기 마련이다.
아이는 물론 미성숙하다. 상황을 바르게 판단하고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하는 것도 맞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부모가 대신해준다면 아이는 언제 사회생활이란 것을 배울 수 있을까? 어울리는 방법을 어찌 터득할 수 있을까?
수시로 나서는 보호자라면 아이는 매번 양육자의 등뒤에 숨어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마련이다. 가정으로 돌아가 투덜거리거나 칭얼거리면 득달같이 보호자가 나선다는 것을 누구보다 아이가 잘 알기 때문이다. 아이는 자신의 고민과 노력 없이도 일이 손쉽게 처리되는 메커니즘을 인지하고 또 늘 애용한다.
언제까지 아이의 손발 노릇을 할 것인지 아리송하다. 다 크면 그만하겠다 판단하겠지만, 아이는 절대 그럴 생각이 없을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이 있었다. 13살인데도 한 문장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조금 더 공부하자 했더니 그럴 필요 없단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알아서 살아야 하는데 괜찮겠냐 물었다. 아이는 지금처럼 엄마 아빠가 있어서 도와줄 테니 걱정이 없단다. 부모님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된다 했더니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방긋 웃더니 누나들한테 도와달라고 하면 어른이 돼도 걱정이 없다고 대답했다. 기생 생활이 뇌리에 완벽하게 자리잡은 것이다.
아이 스스로 문제를 깊이 고심하고 두렵지만 해결하려는 행동을 취하도록 응원하는 게 부모의 역할임에도 넘치는 모성애가 그걸 이상한 방향으로 이끄는 듯싶어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