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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eajigi Oct 17. 2023

비우기

복재 방지


 이 시기 내게 찾아오는 무기력해짐이 가을 날씨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하던 것들의 마무리 뒤에 찾아오는 나른함 때문인지 그건 모르겠다.


 한때는 이 무력감에서 벗어나려 아등바등 또 다른 무엇인가를 해보기도 했었다. 바쁜 순간에는 잠시 잊히나 집으로 돌아와서는 댐이 터지듯 일순간 미뤘던 감정이 밀려들었다.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말이다.


 이제 불안이나 우울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면 내버려 둔다. 이 또한 나의 일부이려니 한다. 의욕이 사라지니 꼭 필요한 것들이 아니고서는 모른척 한다. 눈앞에 보이는 일은 빠르게 끝내버려야 후련하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시점이기도 하다. 하고자 하는 것들을 비운다. 해야만 한다는 목표지향적 행동 습성 또한 무뎌진다.


 다작을 한다고 너댓편의 글을 동시에 써 내려갔던 때가 있다. 나름의 줄기를 고수하려 했지만 모든 글이 비슷비슷해졌다. 소재만 다를 뿐 머릿속 주인공은 하나였던 것이다.

 자기 복재에서 벗어나려면 철저히 비워야 한다. 다른 글이라면 주인공도 바뀌어야만 한다. 내 안에 있던 글 속 인물들을 모두 지워야 가능한 일이다.


 나의 무기력은 데이터 삭제에 있어 매우 효과적이다. 불과 며칠 만에 내가 무슨 글을 썼었나 가물가물하다.


 너무 깊게 발을 담그지 않는다면

 헤어 나올 믿음이 있다면

 무기력함도 나름 매력 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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