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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eajigi Dec 23. 2023

비타민 같은 아이 (7)

D-day


 빈텀블러를 들고 출근하기에 매일 물을 채워야 한다. 물을 거의 마시지 않는 습관 때문에 담낭결석으로 제거 수술을 했고 또 무슨 문제가 생길지 몰라 의도적으로 물을 마셔야만 한다. 기관지 확장증에도 적당한 수분 섭취가 필요하다기에 물 마시기가 약복용처럼 되어버렸다.

 책상에 가방을 놓자마자 다시 나가니 내게 어디 가는지 쪼르륵 달려와 묻는다. 물을 떠 오려한다 했더니 요 녀석 내 텀블러를 들고 잽싸게 달아난다. 그렇게 이 아이가 물을 떠다 주기 시작했다.

 여름에는 냉수만 떠오더니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미지근한 물로, 차가운 겨울이 되니 따뜻한 물을 알아서 가져다준다.

 이런 러블리한 녀석은 정말 처음이다. 물을 떠다 줄 때마다 매번 고맙다 말하지만 그것으로 고마움을 다 표현하지는 못했다. 아이스크림 기프티콘도 두어 번 주긴 했지만 마찬가지다.


 며칠 전 물을 떠 오는 아이를 보고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보였다. 아이가 그게 뭔지 묻기에 이제 2주 남았다 말하려 했다. 아이는 재빨리 한 손으로는 내 입을 틀어막고 다른 손으로는 두 개 손가락을 꼭 잡는다. 말하지 말라는 강력한 표현이다.


 녀석 덕분에 정신적 & 육체적 위태로운 한 해를 잘 보내긴 했다. 남은 기간 녀석에게 뭘 해줘야 하나 고심 중이긴 하다. 이 녀석은 어디 가든 누구와 있든 사랑받을 아이다.


 콧물을 흘리면서도 점퍼를 대강 입고 나가기에 요즘은 매일 다시 불러서 지퍼를 목 끝까지 올려주곤 한다. 조심해서 잘 가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정말 무탈히 잘 자라주었으면 싶은 바람이 생기는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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