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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eajigi Mar 01. 2024

삶의 상대성

주관적 해석

 삶을 0에서 10까지 수치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어디까지가 행복과 불행의 경계일까?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수치와 타인이 생각하는 기준이 과연 같을까?

 지금 설정한 행복 수치가 절대불멸의 기준으로 앞으로도 절대 변하지 않을 확고한 척도가 될 수 있을까?


 수술로 병실에 입원했을 때는 수술부위 통증이 사라지면 얼마나 좋을까 했다. 약간의 움직임이 가능하자 소변줄만 없어도 한결 기분이 좋아지겠다 했다. 소변줄이 사라지자 퇴원만 기다렸다.

 일상에서 기대했던 행복은 입원 시 바랐던 것들과 사뭇 달랐다. 삶에서 바라는 것들은 처한 상황과 주위 여건에 따라 이처럼 시시각각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것만 있으면 정말 행복하겠다 싶어 많은 이들이 로또를 사지만, 당첨된 모든 이들이 행복에 겨워 잘 사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욕심이란 늘 누리는 것 이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자신이 설정한 행복을 는 이에게 변화무쌍한 행복이란 언제나 쭉뻗은 손끝에서 손가락 한마디만큼 떨어져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절대 잡히지 않는다.


 노력으로 이뤄낼 수 있는 것은 대부분 가시적이고 형이하학적인 것들이다. 형이상학적이고 비가시적인 것들은 노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 존재한다. 노력이 모든 것을 해결했다면 세상 모든 이들은 불행한 삶에서 벗어나야 했다. 불행 속에서 허우적거리고픈 이는 단 한 명도 없을 테니 말이다.


 힘들면 버텨보는 것이고 기쁨이 넘치면 누리면 그만인 것이다. 밝고 좋은 것들만 오래 갖겠다고 기를 쓰면 안고 있는 웃음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할 뿐이다. 덜컥 다가온 불행에 주저앉을 뿐이다. 내가 어찌할 수도 없는 일들은 날벼락처럼 날아들기에 어렵지만 그런가 보다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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