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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eajigi Feb 26. 2024

연 끊기의 시작

자살 소동


 가르쳤던 아이들과 연을 끊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인지 몰랐다. 왜 이러는지 계기가 분명 있었을텐데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두리뭉실하게 내가 감당하기 힘들어서 정도로 생각했다.


이번주에 마지막으로 만날 22살된 녀석을 떠올리다 알게 되었다. 내가 언제부터 아이들과 연을 칼같이 끊었는지를 말이다. 그해 아이들은 정말 다이내믹했다. 교실 내 금품 도난사고는 연중행사였다. 교사인 내 돈도 감쪽같이 사라졌으니 말이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훔쳐가는 신출귀몰한 범인은 결국 드러나지 않았다. 집에서까지 부모님 지갑에 손을 대는 녀석도 있었다. 조횟수를 올리겠다고 담배 피우는 영상을 찍어 자신의 SNS에 올렸고 그것도 부족했는지 공중화장실에 불을 지르고 생중계를 하다가 경찰서에서 연락을 받았다. 텍스트만 보면 큰 학생들이라 짐작할테지만 모두  초등학교 6학년 겨우 12살 짜리들이 만든 일이다.


 여기까지도 임계점을 넘었으나 인연 끊기에 결정타는 따로 있었다.


결석이 담도를 막아 담낭이 기능을 상실했고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여러 사정 때문에 복통을 오래도 참고 있었다. 담당의 말로는 그 고통이 출산과 견줘도 뒤지지 않을 정도라 했으니 한 아이를 서른 번 낳은 통증을 참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수술을 삼일 앞두고 날벼락같은 전화를 받았다. 한 아이가 자살 소동을 벌렸다는 소식이었다. 방학중 무슨 일인가 쫓아갔고 다른 아이들까지 동원해 남은 학기는 겨우 마칠 수 있었다.


문제는 학생의 자살소동 소식이 내 안에 너무 깊은 생채기를 냈다는 점이었다. 그때는 그냥 더는 이 아이에 대한 소식을 알거나 듣고 싶지 않다 정도였다. 간접적인 루트로라도 정보가 전달될까 우려스러워 당해연도 아이들과 학부모 연락처를 모두 차단했고 SNS계정도 비공개로 바꿨다. 그때 이후로는 계속 아이들과 한해 잘 보내고 다음 해에는 절대 소식을 듣고 싶지 않은 것이 습관처럼 몸에 배어버렸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가르쳤던 아이들이 잘 못되었다는 소식을 내가 감내하기 힘들었구나 싶다. 행여나 그 불행에 내가 티끌만큼의 영향을 미쳤나 싶은 두려움이 컸다는 판단이 섰던 것이다. 이유 모를 죄책감을 자책하기 싫었다.


연 끊기가 좋은 액션이 아님은 알면서도 계속 연을 이어가기에 심적 부담은 여전히 크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로 만난 사이가 매번 좋으면 다행이지만 그럴 확률은 제로에 가까움을 알기에 끊는 것이 맞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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