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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의 시대 6

치열함

by Aheajigi


어딜 가나 민원이 판을 치고 불만이 폭주한다. 소란스러움을 피해 산을 찾았건만 이곳도 누군가의 샤우팅에서 안전하지 못하다.


북적거리는 학교에서 있었을 때 일이다. 교실은 장난을 거는 아이들과 당하는 아이들로 산만했고 복도는 내달리는 녀석들로 혼란스러웠다. 입이 밥을 먹는 일로 바빠서 조용해야 할 급식소까지도 왁자지껄하여 현기증이 났다.

건축연한이 다되어 재건축공사로 날뛰는 본교아이들을 태우고 분교에서 수업한 적이 있었다. 조용히 하라 말하지도 않았고 뛰지 말라 잔소리도 없었다. 아이들이 잠잠해졌다. 쉬는 시간이면 냅다 복도를 달려가던 녀석에게 물었다. 왜 안뒤냐고 말이다. 뭐 하러 뛰냐고 되묻는다. 화장실이 텅 비어 소변기가 남아도는데 더 이상 뛰어야 할 이유가 없단다.

학교라는 시스템이 아이들을 소란하게 만들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아이들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구조적 문제가 있음을 한 번도 자각하지 못했다.


이 나라에 불만이 흥건한 이유를 개개인만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경쟁이 만연하게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예절이나 도덕을 운운하며 배려를 하라니 어이가 없다.

자신의 삶에 여유란 게 있는지 되짚어보면 간단히 알 일이다. 매번 일에 치이고 시간에 쫓기듯 살아가면서도 남들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강박에서 우린 절대 자유롭지 못하다.

사회적 안전망이 없기에 손에 쥔 것을 놓는 순간 벼랑 끝으로 추락할 것 같은 아찔함만 가득하다. 해서 더 악착같이 경쟁에서 살아남으로 아둥바둥하지 싶다.


이런 사회에서 불만 없이 살아가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가장 한심한 것은 이런 문제 많은 사회시스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녀들이 이런 시스템에 더 잘 적응하게 밀어붙이는 기성세대의 작태이다.

바늘구멍에 코끼리를 밀어 넣는 멍청한 짓거리를 업으로 삼고 있으니 난 수시로 자괴감에 빠지곤 한다.


치열함을 걷어내지 못하는 한 불만은 점점 더 넓고 깊게 이 사회를 짓이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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