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어렵다. 요리라면 각기 다른 취향을 고려한 최접점을 찾아야 한다. 손님 입맛 맞추기가 말처럼 쉬우면 요리사는 아무나 한다. 치료라면 아픈 곳을 찾아 해결해 주어야 한다. 아픈 곳과 병의 원인이 다른 경우가 많아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은 필수다. 앞선 두 가지 사람 상대하는 일의 공통점은 필요한 이들이 자발적으로 찾아가며 적절한 값 또한 치러야 한다는 점이다.
교육은 좀 다르다. 세금을 통해 운영되기는 하나 당장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가지 않는다. 찾아가기보다 거기 있으니 간다. 의무 교육인 초-중학교의 경우.
식당과 병원의 능동성을띤 발딛음과 달리 교육은 그 대상이 외부의 압력에 의해 반강제로 가야만 한다. 극단적인 피동성을 태생적으로 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학교 공부란게 더 하기 싫은가 보다. 돈도 지불하지 않는 공짜이면서도 만족도가 낮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물론 세금을 내지만 이를 직접적으로 체감하지는 않는다)
요리사나 의사는 식재료 혹은 환자의 범주가 정해져 있다. 각기 전문 분야가 있어 자신의 기술 스팩트럼 한계도 명확하다. 경계를 넘어서면 적합한 스킬을 가진 다른 이들에게로 수요자가 알아서 발걸음을 돌린다.
교육은 연령별 제한만 있을 뿐 학습 정도와 신체 능력 그리고 성격이 정말 다양하다. 그래서 때로는 가르치는 이의 능력치 한계 폭을 벗어난 아이들까지 데리고 있어야 한다. 두리뭉실 책임이란 말로 교사를 옭아매버린다.(교사를 뛰어 넘는 학생이라면 좋으련만 바닥을 알 수 없는 능력자들이 점점 많아진다.)
하지만, 이런 교사를 참 쉽게들 본다. 아이들 데리고 놀아주면 되는 것으로 보이나 보다. 천차만별인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단계 발전을 시키는 일이 과연 그리 만만한 일일까? 뭐든 남이하면 쉬워 보이기 마련이다. 그 쉬워 보이는 일이 내일이 되어버리면 힘듦을 절감한다.
병원 의사 앞에서 배가 아픈데 소화불량 같으니 소화제 달라는 환자를 봤다. 진단부터 치료까지 의사한테 통보하는 환자. 이건 무슨 능력이신건지? 옆에서 보고 있다니 기가 차다. 누가 환자고 누가 의사인지 모르겠다. 셀프진료 가능하시면서 소화불량 미리 막지는 못하셨는지 그게 더 신기할 따름이다. 어디서 얄팍한 어쭙잖은 지식을 머리에 담고는 이토록 아는 척을 하는 것인지? 이런 행위는 나만 이상한 건가?
사람을 대하는 것을 점점 어렵게 만드는 것은 이런 널려있는 설익은 지식으로 무장한 이들이 많아지는 것도 한 원인은 아닐까? 학교가 갈수록 민원이 늘어나는 까닭도 같은 맥락일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