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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eajigi Mar 16. 2024

학습의 비효율성

탓하지 말아라!


살기 위해 공부란 것을 한 적이 있다. 중학교 시절 수학시간이 그랬다. 첫 시간 프린트물 한 개를 준다. 그리고 판서를 하며 설명을 한다. 또 다른 프린트물을 나눠 준다. 다음시간까지 반드시 풀어 오란다. 다음 시간이 칠판에 선을 그어 다섯 칸으로 나눈다. 그리고 불규칙한 패턴으로 학생들 번호를 부른 뒤 프린트물에 있는 몇 번 문제를 풀어보라 한다. 풀지 못하거나 식과 답이 틀린 학생은 복도로 나가란다. 다음 또 다른 학생 번호를 부르고 문제를 풀라한 뒤 복도로 나간 학생들 타작을 시작한다. 쩌렁쩌렁 울리는 매 맞는 소리에 교실은 공포 그 자체다. 다음 수학 시간부터 학생들은 생존을 위해 문제를 풀었다. 머릿속이 뇌보다 돌에 가까운 녀석들도 바위에 각인하듯 문제 풀이 과정 전체와 답을 외우려 안간힘을 썼다. 각인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마련이라 돌멩이들은 타작을 피하지는 못했다. 아주 가끔 각인된 문제를 풀라 했을 때는 함박웃음을 짓기는 했지만 말이다.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게임 요소를 수업에 접목하고 스마트 디바이스를 사용하는 것도 어느 정도 학습이란 것에 의욕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학습은 결국 학습하는 이의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학습에 대한 동기부여는 학습이 왜 필요한지를 자각하는데서부터 시작된다. 학습자가 이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학습효율성은 제로다.


타고난 머리란 게 있기는 하지만 그건 0.1% 미만만 해당하는 일이다. 진득하게 앉아서 집중을 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공부가 가장 쉽다고 말하는 기성세대는 둘 중 하나다. 정말 천제적 머리를 갖고 있던지 아니면 공부란 것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던지 말이다. 학창 시절 신나게 놀다가 이제 일이란 것을 하면서 닥친 환경이 버겁다 싶으니 공부가 일보다 쉬운 줄 알고 착각을 하는 것이다.


공부는 노력만큼 결괏값이 나오지 않는다. 망각하기도 하고 다른 상황에 응용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무엇보다 내가 노력이란 것을 했다 해도 남들이 그 이상의 노력을 했을 경우 결과는 오히려 뒤로 미끄러질 가능성이 크다. 학습은 절대 효율적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아웃풋도 확신할 수 없다. 실력의 문제라기보다 환경이 애쓴 만큼의 값어치를 인정해 줄 수 없는 상태란 것이다.


학습을 통해 배워야 할 가치는 노력하는 자세 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공부라는 힘든 여정에 양육자가 할 일은 지지와 격려란 점을 잊지 말았으면 싶다. 기성세대 당신들이 성실한 학창 시절을 보내지 않았음은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 것이다. 자식 앞에서 감춘다 하지만 스스로가 SKY 졸업생이 아니기에 가려지지도 않는다. 비효율적이고 희뿌연 안갯속을 걷는 자녀들에게 든든한 힘이라도 되어주길 바란다. 자녀를 다그치고 옭죄는게 부모 역할이라 착각한다면 당신 자신이 다시 그 비효율적 학습을 시작해라. 당신들부터 서울대를 가면 자식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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