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느 범주인가 싶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면 의인이다.
도움을 주지도 못하지만 해를 끼치지 않으면 범인(凡人)이다.
도움은커녕 민폐만 끼치면 악인이다.
의인이 되기에 터무니 없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범인(凡人)이라 말하기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다만 악인까지는 되지 않으려 조심조심 신경을 쓴다. 내가 본 나의 모습이다.
드러나지 않는 이곳에서 분풀이를 하고는 있지만 현실의 나는 타인과 그다지 만나지도 말을 오래 나누지도 않는다. 홀로 조용하게 걷기를 즐기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는 것이 마음 편하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상대의 말과 행동을 통해 상태가 어떤지를 살피고 숨은 의도까지 읽어내며 대화란 것을 이어가야 하는 고도의 정신작용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흔히들 말하는 기가 빨리는 느낌이 이 때문인 듯하여 나름 오래 알아온 사이가 아니고서는 절대 섣불리 만나는 일을 행하지 않는 까닭이다. 고도의 정신노동을 요하지 않는 홀로 걷기를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