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클리닉 상담일지
결혼하고 3년 차에 우리 집에 새 식구가 들어왔다.
작고 귀여운 아기 강아지.
나는 강아지를 데려오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틀 만에 아기 강아지에게 홀려버린 남편에게
강아지를 키우는 삶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산책과 배변 치우기, 목욕시키기, 짖는 문제, 여행도 못 갈 거고
데려온 강아지가 여보의 생각과는 다르게 행동에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계속해서 얘기했었다.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남편은 퇴근한 나를 데리고 강아지를 보여주러 갔다.
나는 가는 길에서조차
"아냐 이건 신중해야 해. 만나기로 했다니 일단 보기는 하겠지만
당장 데려올 순 없어,, 이번주말까지만 더 생각해 보자.."
쉴 새 없이 얘기하며 갔지만
강아지를 보는 순간 말을 잃었다.
"지금 당장 저희가 데려갈 수 있을까요?"
남편은 나를 잘 안다. 참 똑똑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백 마디 말로 남편에게 강아지를 데려오지 말자고 설득했지만,
남편은 하나의 행동으로 나를 완벽하게 설득했다.
참... 그래.. 너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었지.
말 주변이 없지만 상대방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잘 이끌어 낸다.
나는 항상 남편의 이런 점이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무리 논리적으로 근거를 대가며 따지고 반박해도
이상하게 남편한테는 통하지 않았다.
남편이 내 얘기를 끝까지 듣고 나서 말하는 한마디가,
보여주는 행동이 오히려 내 마음을 단번에 돌렸다.
이렇게 개육아의 삶에 던져진 우리는 이전과 180도 다른 삶을 살았다.
강아지는 너무나 예뻤고, 나는 그 누구보다 사랑해 주며 따듯하게 키우고 싶었다.
맞벌이 부부로 인해 평일 낮에 하루종일 혼자 집에 있는 우리 강아지가 너무 불쌍해서
2시간씩 펫시터를 불렀고, 평일 저녁에는 절대 약속을 잡지 않았다.
주말만이 하루종일 강아지와 같이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므로 주말에도 약속을 잡지 않았다.
친구들이 보자고 하면 우리 집으로 불러서 강아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지낸 지 10개월
강아지는 분리불안도 없고 헛짖음도 없고 세상 그 어느 강아지보다 착하고 늠름하게 잘 큰 1살이 되었지만
나와 남편은 연애 1년, 결혼 3년 총 4년의 만남 기간 중 그 어느 때보다 사이가 좋지 않았다.
강아지를 키우며 매달 고정비용이 거의 백만 원 가까이 늘었고,
아침, 저녁으로 추가된 산책시간으로 인해 잠자는 시간이 줄었다.
강아지를 위해 집안이 항상 깨끗하게 유지되었지만
반대로 말하면 매일 정리해야 하는 집안일이 늘었다.
남편은 주말에도 돈을 벌어야겠다며 출근하는 날이 많아졌고
나는 독박육아에 강아지와 둘이서만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래서 남편이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는 남편과 함께 친구들을 만나고 싶었다.
일단 남편이 항상 차를 가지고 다니고, 나는 운전을 못하기 때문에
남편이 없으면 나는 강아지와 어딜 다니기가 힘들었다.
강아지와 나는 둘 다 멀미가 심해서 택시를 잘 타지 못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을 친구로 생각하는 내 친구들도 남편을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남편은 내가 친구들이 보고 싶어 한다고 이날 시간되냐고 물어보더라 하면서
예전과 똑같이 양해를 구하면, 음..... 고민을 하며 일단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약속 날짜가 다가올수록 피곤하다는 말을 많이 했다.
나는 점점 눈치가 보였다.
"이번엔 남편분도 오는 거야??"
물어보는 친구들에게는
"아 남편이 좀 바빠서,,"
둘러대기 바빴고
남편에게는
"주말에 애들 만나도 괜찮겠어..?"
컨디션을 살피기 바빴다.
내 친구들, 남편, 나 그 어느 쪽도 잘못은 없다.
다만 내 친구들은 친한 친구의 남편을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일 뿐이고
남편은 그냥 쉬고 싶을 뿐이다.
나는..
나는....
나는 사실 남편의 피곤하다는 말을 납득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