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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eavenlyp Oct 04. 2021

집 값을 천 만원은 깎았어야 하는데

입주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

“500만 원만 깎아 주세요.”


매매를 확정 짓기 전, 앞에서는 흠을 잡고 뒤에서는 네고를 시도했던 그 아주머니를 본받아 매도인에게 ‘딜’을 넣어 봤었다. 세입자가 살고 있는 상태라 집 안을 잘 살펴 보지 못했는데, 일단 짐이 빠지고 나면 도배는 새로 해야 할 것 같고, 일부 부서져 있던 데크도 수선해야 하고 외장도 새로 해야 할 것 같다고 이런 저런 이유를 댔다.


매도인은 분양 받았던 가격보다 6천만원이나 낮춰 내놓은 것이라며 처음엔 거절하다가, 200만 원을 선심 쓰듯 깎아 주었다. (매물이 귀하고 부르는 게 값인 지역에서는 어렵겠지만, 제주도에서 집을 구한다면 밑져야 본전이니 상식적인 선에서는 한 번 시도해 봐도 될 것 같다.)


집 값에서 200만원을 덜 내도 되니 그 200만원을 예산으로 이런저런 셀프 인테리어를 계획했다. 벽에는 벽지 대신 페인트를 발라야지, 천장은 페인트 바르기가 어려울 테니까 도배를 하고, 흉물 같은 아트월은 철거해 버릴 거야, 데크도 철거하고 판석을 깔아볼까 등. 꿈은 아주 야무졌다. 그러나 매매를 하고 몇 개월쯤 지나, 엄청난 폭설과 한파가 몰아치고 난 뒤에 세입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한파에 테라스 야외에 있던 수도관이 얼어 터진 건지 집 안으로 물이 샌다는 것이었다. 집에 문제가 생기면 확인해 달라고 할 수 있는 관리사무소나 수리를 요청할 집주인이 더 이상 없음을, 집의 모든 문제를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함을 절실히 느끼는 순간이었다.


손을 떨며 누수 탐지를 해준다는 업체를 찾았다. 때아닌 한파가 온 터라 수도가 얼어 터진 수요가 많은지 일정이 맞는 업체를 찾기 어려웠지만, 한 업체에서 수도 배관을 점검하고 문제가 생긴 부분을 간단히 수리해 주었다. 이걸로 처리가 되지 않으면 여기 테라스를 다 들어 내야 할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남기고, 20만원이라는 무시무시한 수리비를 받은 뒤 홀연히 가셨다. 20만원이면 선방했어, 라면서 서로를 위로했지만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세입자가 나가고 빈 집을 점검해보니, 불길한 예감이 현실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행히 벽지는 생각보다 찢김이나 오염이 없었지만, 모자란 수납을 채우려고 세입자가 만들어 넣은 붙박이장이 시공이 잘못 되었는지, 방 하나에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그래도 셀프페인팅으로 충분히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화장실이었다. 화장실 벽에 육안으로도 뚜렷하게, 열 몇 개의 타일에 세로금이 가 있었다. 두드려 보니 금 간 타일 뿐만 아니라 그 주변 타일도 ‘탁탁탁’하는 둔탁한 소리가 아니라 ‘텅텅텅’하는 속 빈 소리가 났다. 세입자는 왜 이런 중차대한 상황을 집주인에게 공유하지 않았을까. 처음 집을 보았을 때는 분명 크게 이상이 없었는데, 예의 그 한파와 폭설을 지나면서 작게 있었던 금이 커진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안전상으로도 위험하고 보기에도 좋지 않은 타일의 크랙은 반드시 수리가 필요했다. 비용을 아껴 보려 이런 저런 대안을 찾았지만, 화장실 공사의 특성상 일부를 수리하는 것도 견적이 꽤 나가서 속절없이 300만원 정도를 화장실 리모델링에 썼다.


더 환장할 노릇은 입주하고야 창호가 단창임을 발견한 것이다. 단창이라니! 왜 보지 못했지? 이중창에 너무 익숙해져서 단창일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게다가 집을 보러 갈 때마다 창이 블라인드와 커튼으로 모두 가려져 있었다! 집 간 간격이 꽤 가깝다 보니, 세입자 분이 프라이버시에 조금 민감한가 보다, 라고만 생각했고 살짝 커튼을 들춰서 채광이 어떤지 확인하느라 정작 창호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이제 우리는 유리 한 장으로 제주도 중산간의 거센 바람과 겨울 날씨, 태풍과 싸워야 한다. 세상에 창호 시공을 새로 하려면 이게 얼마야?


심지어 입주 전 수리한 누수 문제도 제대로 잡히지 않았는지 여름 입주 후 장마철을 보내고 나자 1층 입구 쪽 천장에 얼룩이 다시 등장했다. 천장은 이전에 전세집 도배를 해주신 사장님을 통해 깨끗하게 도배해 놓았는데, 물 얼룩을 보자니 마음이 착잡했다. 검색해보니 테라스가 있는 주택에서 꽤 발생하는 일이란다. 테라스와 벽면부의 접합점에 다시 한 번 방수액을 바르고, 물이 배어 나왔던 천장 부분의 합판은 아예 제거하고 패브릭으로 대강 가려 놓았다. 최근의 태풍 때도 무사했으니 당분간은 이 대신 잇몸으로 살아 보려고 한다.


여기까지 하면 머리 속으로 대충 계산기를 두드려 봐도, 열심히 깎은 200만원은 이미 흔적도 없이 공중분해, 최소 천 오백 만 원 정도는 집에 더 써야 하는 셈이다.


‘집 값을 천 만 원 깎아달라고 할 걸!’


머리칼을 쥐어 잡으며 아쉬워 해봐도 소용이 없다. 매도인은 진작 이 집을 우리에게 넘기고 이 집과 관련 없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집 매매에 ‘영끌’한 우리는 더 이상 여력이 없어 그냥 살기로 했다. 집에 살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하자는 아니고, 설령 이 모든 걸 미리 알고 있었더라도 아마 이 집을 샀을 것 같다. 살다가 정 불편하면 하나씩 수리해야지 뭐.


결론. 집을 사려면 집 값 이상이 필요하다. 집을 사는 과정에서부터 중개사에 중개수수료를, 법무사에게는 등기 비용을 내야 하고, 나라에는 취득세를 내야 한다. 이것도 더하니 몇 백 만원은 우스웠다. 집 값에 비례해서 오르는 것들도 있어 생각보다 꽤 많은 여유자금이 필요하다.


올 수리 인테리어를 염두에 두고 집 상태와 상관 없이 매매를 했다면 모르지만, 입주를 한 이후에 기본적인 도배나 장판 변경 외에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낡아 버린 곳곳에 수리가 필요할 수 있다. 단독주택이라면 공동주택에서 함께 관리하는 부분들에 대해서도 직접 업체를 불러 손을 봐야 한다.


이미 실수를 저질러 버린 인간이 전할 수 있는 조언이라고는 그저 매매 전에 반드시 꼼꼼히 집을 살펴보기 바란다는 것. 세입자가 있어 어렵다고 해도 세입자에게 음료수든 과일이든 뇌물을 잔뜩 안기고 집을 구석구석 살펴 보길 바란다. 집에 흠이 좀 있어도 다른 조건이 좋다면 매매할 수야 있지만,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큰 돈을 지출하게 되면 어쩐지 속은 것 같고 더 아깝고 뭐 그런 법이니까. 물론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내 집. 살다 보면 정붙이고 살게 되긴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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