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aheavenlyp
Oct 03. 2021
내 집 마련 10개월 장기프로젝트-上
내집마련 분투기 - 집과 집, 그리고 또 집
‘집을 샀다’
고작 4음절을 말하기까지, 10개월이 걸렸다.
여름부터 집을 보러 다녔고 그 다음해 여름에야 입주를 했으니, 매물들을 알아보는데 걸린 시간까지 합치면 꼭 1년이 걸린 셈이다. 이 장기 프로젝트는 4단계를 거쳐 완성되었는데, 집을 사겠다는 꿈을 품은 분들을 위해서 내가 밟아 온 과정들을 정리해 보려 한다.
Step1. 매물 탐색
자취방이라도 알아본 경험이 있다면 매물 탐색의 과정이 얼마나 쓰라린지 잘 알 것이다. 예산이 넉넉하지 않다면 더 그렇다. 3화에서도 잠깐 말했듯 마당과 집의 넓이가 적당하고, 큰 수리 없이 살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괜찮은 집, 또 회사에서 너무 멀지 않고, 주변에 학교를 비롯한 편의시설이 있는 집은 정말 많지 않았다.
오죽 없었으면 차라리 땅을 사서 집을 짓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 집을 지을만한 땅에는 이미 집이 다 지어져 있다. 그렇지 않은 땅을 집을 지을 수 있게 만들려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대강 알아본 것만으로도 지어진 집을 사는 것의 최소 열 배 이상 품이 드는 일이었다.
빠른 포기 후 부동산 정보지 사이트에 예산과 지역 설정을 해두고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고침 하면서 매물을 찾았다. 제주 서쪽에 타운하우스 단지가 많아 그쪽까지 범위를 넓혔다면 후보지가 좀 더 있었겠지만, 각자 회사와 본가 위치를 고려해 제주 동북권으로 한정 짓다 보니 괜찮은 매물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 없었다.
괜찮은 매물이 나오면 약속을 잡고 찾아가는 게 또 일이다. 함덕해변 인근에 예쁘게 리모델링 된 단독주택을 한 번 보고 싶었는데, 집주인이 집을 한 달 살기로 임대하고 있는 건지 방문 약속을 잡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매주 목요일만 가능하다고 했다가, 그 날은 또 세입자가 바뀌는 날이라 안 된다고 했다가 변덕이 죽 끓듯 했다. 매물 가격도 3억 5천이랬다, 2억 8천이랬다 부동산 정보지 사이트마다, 중개사마다 편차가 심했다. 결국 내부를 보지 못하고 포기했는데, 나중에 거래 보류라고 올라오더라.
눈 앞에서 매물을 뺏기는(?) 경험도 했다. 위치가 괜찮은 타운하우스였고 가격도 얼추 맞았다. 중개사 분이 문의가 많아 약속이 겹쳤다면서 다른 팀과 함께 집을 봐도 되겠냐고 하기에, 상관없다고 했다. 저 쪽은 중년의 아주머니와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들이 왔다. 아주머니는 여기가 낡았네, 저기가 지저분하네 하며 세입자 분이 있는데도 연신 흠을 잡았다.
내가 보기에는 내부 구조도 나쁘지 않고 나름 깔끔해서, 퇴근 중이던 그에게 전화를 걸어 바로 이쪽으로 오라고, 같이 한 번 살펴보고 상의하자고 말했다. 중개사 분도 겹치기 약속이 미안했던지 기다려 주겠다고 하기에 집 마당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중개사 분께 전화가 왔다. 함께 집을 본 그 어머니의 전화였다.
"집 값 500만원 깎아 주면 계약하겠다고 하시네요"
전화를 끊은 중개사가 머쓱한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정말 계약을 한 건지 그 매물은 곧 사이트에서 사라졌다. 앞에서는 흠을 잡고 뒤에서는 매물을 놓칠까 당장 전화라니, 부동산은 정말 새로운 세계구나.
그렇게 열 몇 곳의 주택을 살펴본 끝에 우리 집을 만나게 됐다. 결과가 좋아서 다 좋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지만, 후보지를 찾고 허탕을 치기를 반복하는 과정이 마냥 괴롭지만은 않았다. 돈 한 푼 없어도 아이쇼핑은 한껏 즐길 수 있지 않나. 이 집은 뭐가 어떻고, 저 집은 이게 저랬다면서 그날 발견한 매물들을 놓고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는 것이 나름 하루의 즐거움이었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인디언들처럼. 어딘가에 내 집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탐색을 계속한다면, 반드시 내 집을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
Step 2. 매매 계약 및 등기
첫 눈에 반한 집을 내 것으로 만들려면, 우선 가계약금을 입금해야 한다. 이 집을 내가 사겠다고 찜 해놓는 것이다. 액수가 큰 계약금(통상 거래가격의 10%)을 바로 입금하면서 계약을 하기가 어려우니, 적은 액수의 돈을 걸어 계약 의사를 표시하기 위함이다.
고민이 길어지면 발빠른 누군가의 손으로 좋은 매물이 넘어갈 수 있으니 괜찮은 매물이면 바로 가계약금을 입금하는 게 좋다고도 하지만, 서울에 있는 아파트도 아니고 제주도에 있는 단독주택은 그렇게 수월하게 거래가 진행되지 않는다. 또 가계약이라고 하더라도 대상 물건과 거래금액, 계약일이 특정되면 계약과 동일한 효력을 지녀 파기하고자 할 때 번거로워질 수 있으므로 신중할 필요가 있다. 신중하게 하룻밤 동안 생각한 뒤에, 다음 날 가계약금을 넣었다.
가계약과 함께 본계약 날짜를 정했는데, 매도인 사정으로 날짜가 두 번이나 바뀌었다. 처음에는 사업장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서, 자가격리 중이라 외부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으니 날을 미뤘는데, 정작 그 날이 오자 ‘코로나 검사 결과 음성만 나오면 자가격리가 해제 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면서 날짜를 더 뒤로 미뤘다. 그러는 동안에도 우리집이 부동산 정보지에 올라와 있어서, 우리는 혹시나 매매를 철회하거나 가격을 좀 더 부르는 다른 매수인에게 팔려는 것이 아닌가 싶어 불안해해야 했다.(돈 주는 사람이 불안에 떠는 신기한 부동산 시장)
다행히 다른 경쟁자는 없었는지 두 번째로 바꾼 날에는 매도인을 만날 수 있었다. 신분증을 비롯한 각종 서류들을 주고 받고, 계약서에 서명을 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쳤다. 우리를 불안에 떨게 만든 매도인은 나이가 지긋한 여자분이셨고, 나랑 비슷한 나이의 딸과 어린 손녀와 함께 나타나셨다.
젊은 부부가 벌써 집을, 그것도 단독주택을 산다니 신기해 하면서, 모처럼 산 집에서 재미나게 살고 싶었는데 살아 보지도 못하고 몇 천이나 손해 보며 팔게 되었다고 아쉬운 말씀을 하셨다. 표정에는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난 것에 안도하고 있음이 느껴졌지만 말이다. (단독주택은 아무래도 아파트에 비해 매매가 성사되기가 쉽지 않다. 단독주택을 팔려면 최소 1년은 봐야 한다는 말도 있을 정도.)
잔금일에는 법무사가 합세했다. 등기를 셀프로 하는 분들도 있는 모양인데, 억 단위가 오가는 법적 절차를 직접 처리하기가 어쩐지 불안해서 전문가의 손을 빌리기로 했다. 중개사분이 소개해 준 법무사와 친구가 소개해준 법무사, 그리고 법무통이라는 어플을 사용해 견적 비교를 해보았고 법무통에서 받은 견적이 가장 저렴해서 그 쪽으로 진행했다.
양복을 갖춰 입고 필요한 서류를 착착 챙기는 법무사 분을 보니 내 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쩐지 든든한 느낌이었다. 일련의 과정을 마치고 등기권리증이 집에 도착하는 것으로 집의 소유권은 무사히 우리에게 넘어왔다. 법적으로는 이때 이미 집을 산 셈이지만, 아직 큰 산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