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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eavenlyp Oct 02. 2021

제주도 타운하우스를 신혼집으로 선택한 이유

어쩌면 살 집을 고르는 것은 남편감을 고르는 것과 비슷하다

타운하우스.


영미권에서는 벽을 공유하면서 나란히 지어지는 집들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제주도에서 ‘타운하우스’란, 대부분 일정한 면적의 대지를 분할해서 여러 채의 집을 똑같거나 비슷하게 지어 작은 마을을 형성한 주택단지를 부르는 말이다. 우리의 신혼집 역시 코 닿을 거리에 옹기종기 들어선, 똑같이 생긴 7채의 집 중 하나로 흔히 말하는 타운하우스에 해당한다. 왜 하필이면 타운하우스를 신혼집으로 선택하게 됐을까.


답을 알려면 이사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살펴 봐야 한다. 우선 19평짜리 오래된 구축 아파트, 요즘 유행하는 베란다 확장도 되지 않은 나이 많은 아파트는 건장한 성인 두 명과 29kg 나가는 대형견 유자가 함께 살기에 너무 좁았다. 지금이야 유자 하나지만 나중에 가족이 늘어날 수도 있을 텐데, 어차피 언젠가 이사해야 한다면 빨리 옮겨 자리를 잡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공동주택이다 보니 대형견을 기르는 것에 제약도 많았다. 아파트가 꽤나 반려견 친화적인 곳이어서 절반쯤은 개를 키우는 데도 불구하고 그랬다. 법적으로 입마개를 해야 하는 맹견이 아닌데도 아파트 관리사무소에다 우리 개를 지목해 입마개를 하라는 민원을 넣는 사람이 있었다. 2층이라 엘리베이터를 사람과 함께 타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없는 시간대 위주로 산책을 하고, 혹 사람 그림자라도 보이면 멀리서부터 빙 돌아 피해갔는데도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의 단점으로 꼽는 층간소음도 스트레스였다. 이웃들이 모두 조용한 편이었는데도, 물이 내려가는 소리나 세탁기나 청소기 같은 가전이 가동되는 소리처럼 크고 작은 생활 소음은 피할 수 없었다. 심지어 바닥을 타고 울리는 다른 집의 핸드폰 알람 진동에 이른 새벽 잠을 설치기도 했다.


주말다 들리던, 정체 불명의 드르륵하는 소리가 윗집에서 청소기가 힘차게  돌아가는 소리임을 깨달은 후부터 시시때때로 우리집의 천장이 윗집의 바닥이고, 우리집의 바닥이 아랫집의 천장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 깊은 밤에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볼때에도 그 사실은 무겁게 나를 누르는 것 같았다.


저층에 창이 크고 도로가 가까운데 통행량까지 많아서 그런지, 차 다니는 소음도 너무 잘 들렸다. 오토바이 소리가 요란하게 날 때는 도로에 한 복판에 누워 있는 것인가 싶은 착각이 들 때도 있었다. 더운 여름에도 밤에 잘 때 창문을 꼭 닫고 자야할 정도였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이사 이유는 그가 강경하게 아파트 탈출을 희망했기 때문이었다. 나라 전체가 부동산, 특히 아파트에 미쳐 있는데도 그는 아파트를 떠나고 싶어했다. 다행히 내게도 어릴 때 주택 생활을 하면서 마당에서 이것저것 기르고, 흙 만지며 놀았던 추억은 좋게 남아 있었다. 태어날지 안 태어날지 모를 우리의 2세가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 좀 더 자연과 함께 살 수 있는 환경을 선택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제주도는 빌라도 세대수가 많고 부지가 넓어 아파트와 비슷한 곳이 많고, 주차장이나 쓰레기 분리 배출 시스템도 잘 되어 있어 혹 이사를 간대도 같은 가격에 더 넓은 평수로 갈 수 있는 빌라로 가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파트는 이미 부동산 광풍을 맞아 가격이 오를 대로 오른 상태였다. 빌라든 아파트든 공동주택으로 이사를 간다면 앞의 두가지 문제를 계속해서 겪어야 하는 만큼, (가능한 마당이 있는) 주택들을 찾아 봐야 했다.


제주도는 지방 중의 지방인 주제에 집 값은 도가 지나친 수준이기 때문에, 예산에 맞는 후보지들은 많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부동산정보사이트를 들락거리며 이 잡듯이 뒤지고 또 뒤졌다. 어떤 집은 너무 좁았고, 어떤 집은 너무 멀었고, 어떤 집은 너무 비쌌다. 전세집을 알아볼 때 느꼈던, ‘이 세상에 집이 이렇게 많은데, 왜 내 몸 누일 집 하나 구하기가 이렇게 힘든가’하는 깊은 좌절감이 다시 찾아오려던 터에, 이 집을 만났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인생 가장 큰 액수의 쇼핑을 하는데 조건을 따지지 않을 수 없지. 이 집은 내가 내세운 몇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집이었다.


우선,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이 가능했다. 부동산 가격을 좌우하는 것은 아무래도 ‘입지’인지, 제주 공항을 중심으로 제주시내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가격은 싸졌다. 매매가의 앞 자리가 달라지고 평수는 더 넓어졌다. 그래도 버스로 출퇴근이 가능한 범위는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이 기회에 면허를 따라며 설득을 시도했지만, 줄곧 뚜벅이로 살아왔고 운전을 두려워하는 나로선 대중교통 출퇴근은 포기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다행히 이 집은 직장까지 환승없이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고, 정류장도 도보로 2분 정도로 매우 가까웠다. 버스에 타서 직장까지는 대략 40분 정도 걸렸다. 서울에서 도어 투 도어로 1시간 꽉 채운 출퇴근도 해보았던 터라 할 만하게 느껴졌다. (서울에 비해 배차 간격이 매우 길기 때문에 출근 시간 버스를 놓치면 지각 확정이라는 함정이 있긴 하다.)


또 다행인 것은 전 세대가 공실 없이 실제로 거주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제주도 타운하우스 중에는 공실이 많거나, 대부분이 에어비앤비나 펜션 등으로 활용되고 있는 단지도 적지 않다. 아무래도 보안, 소음 등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 집이 속한 단지 내의 다른 6가구는 장년의 부부이거나 어린 자녀가 있는 젊은 부부여서, 무리 없이 어울려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제주도의 깜깜한 밤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너무 외따로 떨어져 있는 단독주택은 무서워서 가고 싶지 않았다. 타운하우스의 단점으로 집 간 거리가 좁다 보니 프라이버시가 보호되지 못한다는 점이 있는데, 나에게는 이웃과 가까이 산다는 게 오히려 장점으로 다가왔다.


어린 자녀가 있는 부부가 거주하고 있다는 것은, 주변에 최소한 초등학교가 위치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차로 3분, 도보로 15분 거리에 초등학교가 있었다. 아이를 낳을지 낳지 않을지도 정하지 않았으면서, 초등학교와의 접근성은 내가 집을 알아볼 때마다 따져 보는 중요 조건 중에 하나였다.(사람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최소 10년 이상 계속 살아서 아이를 낳아 초등학교를 보내게 되든, 중간에 팔고 이사를 가게 되든, 세입자를 구하든 간에 초등학교가 가까이 있다는 것은 장점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했다.


마지막으로 제주도 타운하우스를 '비추'하는 의견들을 살펴 보면 타운하우스는 지분등기로 되어 있어 나의 재산인데도 구조 변경이나 철거, 재건축 등 재산권을 행사하려고 할 때마다 다른 권리자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실제로 제주도에는 건물은 개별 등기여도, 토지는 지분등기로 되어 있는 타운하우스가 대부분이었다. 이 집은 토지와 건물 모두 개별등기로 되어 있어서, 등기부등본 상으로는 단독주택과 동일했다. 추후에 이 집이 낡거나 좁아지면, 철거하고 새로 짓거나 증축하는 것도 자유롭게 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이런 여러 조건과 입주 일자 등을 모두 충족하면서도, 넓지 않은 부지를 쪼개 지어진 타운하우스여서인지 매매가격은 비슷한 평수와 조건의 단독주택보다 저렴한 편이었다. 가장 중요한 예산까지 맞아 떨어지니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큰 고민 없이 단숨에 약까지 할 수 있었던 건, 3초의 법칙이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그 사람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느낄지, 그렇지 않을지는 첫인상을 파악하는 3초 안에 결정된다는 3초의 법칙. 사실 이 집을 살펴 보려고 처음 차에서 내린 순간부터, 나는 한 눈에 반하고 말았다. 타운하우스 단지 옆으로 엄청나게 넓은 콩밭이 펼쳐져 있고 그 아래로 해변가 마을과 오름까지 한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순간 비현실적으로 느껴질만큼 예뻤기 때문이다. 가슴이 확 열리는 듯한 그 느낌에, 나도 모르게 '여기 너무 좋다!'라고 외쳤던 기억이 선명하다.


지금 나의 남편이 된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반사적으로 '오, 괜찮네'라고 생각했던 것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느낌이었다. 첫 느낌은 틀리지 않아 요모조모 따져보고 살펴봐도 그만한 남자가 없었고, 결혼까지 했다. 남편감을 고를 때 정확하게 작동한 나의 직감이 인생 최고액을 건 배팅에서도 맞아 떨어지기를 바라면서, 우리는 이 집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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