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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eavenlyp Oct 04. 2021

셀프 인테리어의 함정

셀프인테리어가 저렴하다는 환상

이전 세입자의 짐이 빠져나가자, 집이 온전한 속살을 드러냈다.


매매 이후 세입자의 전세 기간이 완료 될 때까지 시간이 길었던 터라, 그 동안은 근처를 지날 일이 있을 때 일부러 길을 조금 돌아 집 쪽으로 가서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는 게 다였다. ‘그림의 떡’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모양이다. 아무튼 집 안을 둘러 보는 게 처음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창마다 달려 있던 이국적인 느낌의 나무 덧창은 가까이서 보니 제주도의 비와 바람에 반쯤 썩어있었다. 바람과 햇빛을 차단하는 것 같아 바로 그것 부터 떼어냈다. 그래서인지 집 안은 내가 느꼈던 첫인상보다 오히려 더 밝고 환했다.


계획했던 대로 셀프페인팅을 시작했다. 도배 시공 대신 페인팅을 선택한 이유는 세 가지. 첫 째, 도배가 비쌌다, 둘 째, 제주도에 벤자민무어 페인트 판매점이 있었다, 셋 째, 그 때 한참 열심히 보던 셀프인테리어 유튜버가 셀프페인팅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추천 영상을 올렸다.


제주도는 무슨 이유에선지 다른 지역보다 도배 단가가 높은 편이다. 1, 2층 합쳐 25평 남짓인 주택의 천장만 깨끗한 하얀색 합지로 도배 하는데도 37만원이나 들었다. 벽까지 합지로 한다면 그렇게 비싸지 않겠지만, 이전 집에서 합지 도배를 하고 살아 보니 너무 오염이 심하게 되어 눈에 거슬렸다.


페인트를 이왕 한다면 던에드워드나 벤자민무어처럼 유명한 해외 업체의 것을 쓰고 싶었는데, 만약 배송비가 잔뜩 들었다면 가볍게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벤자민무어 매장이 있어서 눈으로 직접 보고 색상을 골라 주문했다. 덕분에 세상에 그렇게나 다양한 흰색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유튜브를 탐독하며 이론 공부를 마친 뒤, 작업에 돌입했다. 우선 벽면의 오염을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 걸레를 여러 번 빨아 가면서 실크 벽지 사이사이를 닦아 냈다. 곰팡이는 특별히 락스와 세제를 섞고 물을 넣어 희석한 세정제를 발라 더욱 꼼꼼히 닦았다. 닦은 뒤에는 한여름 뜨겁고 습한 날씨에 다시 곰팡이가 번질까 싶어 제습기와 선풍기를 동원해 바짝 말렸다. 그리고는 한 번 더 닦아내고, 말렸다.


깨끗해진 벽 위에 젯소(프라이머)를 칠한다. 기존 벽지 색이 연하고 무늬가 없다면 생략해도 된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우리 집은 방마다 초록색 포인트 벽지가 붙어 있어서 젯소는 불가피했다. 젯소를 한 번, 두 번 발라 짙은 색깔이 어느 정도 가려지자 다음은 페인트칠이었다.

치열한 페인트칠의 흔적이 남은 도구들

복잡하거나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같은 동작을 무한히 반복하는 단순 노동이 이어졌다. 게다가 실크 벽지는 자체에 올록볼록한 엠보싱이 있어 그 틈새까지 페인트를 채우지 않으면 구멍이 뽕뽕 난 것처럼 보였다. 이놈의 보양 테이프는 또 왜 이렇게 잘 떨어지는지, 어느 순간 이후부터는 보양이 되어 있거나 말거나 그냥 칠하고 떨어진 페인트를 닦아내 버렸다.


이 모든 작업 과정은 무지막지하게 더운 여름에 진행 되었다. 친환경 페인트라 냄새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서 에어컨을 틀지 못하고 창문을 열어 놓고 선풍기에 의지해 땀을 식혔다.


시간이 날 때마다 집을 오가면서 조금씩 칠해서 1주일 정도 매달린 끝에, 촌스러운 실크 벽지는 연한 버터크림색으로 칠해진(사실 훨씬 더 밝고 하얀 색으로 하려고 했는데, 선택 실수였다. 아무튼 간에) 아늑하고 포근한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내가 집 안에서 페인트칠, 청소와 씨름하는 사이 그는 더 많은 일을 했다. 거실에 뜬금없이 달려 있던 시커먼 아트월을 떼어내는 것을 시작으로(아트월이 떨어져 나간 자리는 도배사장님이 벽지로 교묘하게 가려주셨다), 전등을 체크해 불이 들어오지 않는 것들을 교환했다. 마당에 제멋대로 자란 나무를 깔끔히 가지치기 하고, 이끼가 피고 때묻은 외부 벽체는 회사에서 빌려온 고압 스프레이로 말끔히 청소했다.

잠깐이나마 더위를 잊게해준, 2층 창밖으로 내다본 풍경 / 유자가 마당에서 마음껏 놀수 있도록, 데크를 재활용해 만든 울타리

군데 군데 부서져 있던 데크도 철거했는데, 무슨 요술을 부렸는지 그 데크 나무가 멋진 울타리로 탈바꿈했다. 데크가 사라져 드러난 흙바닥에는 파쇄석을 한 차 사와서 손수 삽질해 덮었다. 손재주도 좋고 천성이 부지런한 배우자와 함께 하는 것이 아니었다면, 나 같은 사람은 아마 주택에서 살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타일 크랙이 심한 화장실만큼은 어쩔 수 없이 전문가의 손을 빌렸지만, 그 외의 것들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직접 해결했다. 집 이곳 저곳을 계속 살펴 보면서 손길이 닿으니 확실히 집에 대한 애정이 더 쌓이는 것 같다.


하지만 셀프인테리어가 저렴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잘 모르겠다. 물론 이 곳 저곳 셀프로 손본 덕에 확실히 예산을 절감하기는 했다. 그런데 업체를 통해 받는 견적의 대략 50% 정도는 재료비가 차지한다. 셀프로 해서 아낄 수 있는 것은 그 외의 것, 따지자면 인건비다. 쉽게 말해 직접 한다고 해도 여러 필요한 재료들을 어차피 구매해야 한다. 소비자가 소매로 구매하면 단가가 비교적 높고, 한 번 밖에 쓰지 않을 공구들도 사야 하다 보니 그 액수가 꽤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절감되는 인건비 부분은 나의 시간과 노동력을 갈아 넣어서 해결해야 한다. 실제로 우리도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한 달, 그리고 입주를 하고 나서도 틈틈히 집을 정비하는데 시간을 썼다. 여름 내 땡볕에서 일한 그는 얼굴이 새카맣게 타 버렸다. 너무 고생을 시킨 것 같아 맘이 아픈데,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단다.


반면 전문가의 손을 빌린 것들은 빠르고, 간편하고, 확실한 퀄리티로 마무리가 된다. 알아 보는 과정이 조금 번거로워도 돈을 들인 곳은 그렇게 만족스러울 수가 없다. 할 수만 있으면 예산 걱정 않고 확실히 투자해서 싹 리모델링을 하고 싶지만, 당장은 요원한 꿈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한 번 살짝 경험해 본 셀프인테리어의 세계는 넓고도 무궁무진하다. 주방 싱크대 하부장과 끔찍한 꽃무늬 에어컨에 필름지를 입히고, 스위치 커버도 깔끔한 것으로 교체하면 어떨까 싶다. 방문도 요란한 무늬를 없애고 심플하게 바꾸고 싶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과 약간의 돈과 나의 노동력을 줄게, 예쁜 집을 다오."


노래를 부르며 오늘도 검색창에 셀프인테리어를 검색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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