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역사, 나의 역사
살던 집들을 떠올려 보면, 그 때의 내가 함께 생각난다.
어릴 때 살던 아주 오래된 제주도식 돌집. 마루가 진짜 나무라 밟으면 삐걱삐걱하는 소리가 나고, 뒤뜰에는 큰 하귤 나무가 자랐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감명 깊게 읽은 나는 귤나무 줄기를 기어 올라 불편한 자세로 걸터 앉아서 책을 읽기도 했다. 가지 사이에 책을 꽂아 둔 것을 잊었다가 비에 책이 흠뻑 젖기도 했고. 비 오는 밤이면 맹꽁이가 요란하게 울어서, 아빠는 울음소리에 잠을 설치는 가족들을 위해 작살을 들고 나갔었다.
아빠가 땀 흘려 지었던 하얀 벽, 세모 지붕의 집. 넓은 마당에 봄에는 유채를 가을에는 코스모스를 뿌려 꽃밭 속 같았다. 닭과 오리, 토끼와 개가 살던 집. 용케 병아리를 깨워낸 어미 닭이 새끼들을 몰고 나와 땅을 헤집는 법을 가르쳤다. 가끔 돌담 사이에서 뱀이 나오면, 아빠의 삽에 머리가 깨져서 닭의 특식이 되었었다.
가족의 울타리였던 아빠가 떠난 후에 살던 집들. 방이 몇 개였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 빌라였다가 다세대 주택이었다가 조그만 아파트로 빨리도 바뀌었던 집. 한창 공부하던 학생이었을 때라 대부분을 학교에 있었으니 집에 대한 기억도 흐릿한 거겠지.
처음으로 집을 떠나 내 스스로 구한, 대학가 근처의 19만원짜리 고시원 방. 방이라고 부르기에도 뭐한, 해리포터가 살던 벽장 같은 공간이라고 해야 맞겠다. 창문은 고사하고 침대에 누우면 다리는 책상 아래로 넣어야 했다. 공용주방 앞에 있어서 식사 때가 되면 음식 냄새가 났고, 누가 문 앞을 지나가면 발걸음 소리가 고스란히 들렸다. 옆 방의 중국인 유학생은 밤이면 전화를 하면서 자주 흐느꼈다.
다음은 엄마가 차를 팔아 보증금을 마련해 준 오래된 아파트. 낡고 작았지만 창이 커서 해가 잘 들어왔고 동네에 나무가 많았다. 오래된 집이라 청소를 해도 티가 나지 않았고 수납공간이 없다시피 해서 옷들을 행거 아래 바닥에 정리해 놓고 살았었다.
제주도로 돌아와 그를 만난 후로, 집에 대한 기억에 사랑의 역사가 더해졌다. 점심 시간 회사를 탈출해 짧은 데이트를 즐겼던, 북향에 해가 잘 들지 않아 어둑했던 그의 자취방. 양가에 결혼 계획을 알리고 공식적으로 함께 살았던 우리의 첫 신혼집. ‘너와 함께라면 어디든 좋아’라는 마음과, ‘사랑하는 너에게 더 안락한 공간을 주고 싶다’라는 마음이 어지럽게 다투던 시간들이었다.
이제 작은 마당이 딸린 아담한 2층짜리 단독주택이 당분간 바뀔 예정이 없는, 우리 역사의 새로운 무대가 되었다. 우리는 이 집에서 어떤 기억들을 남기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