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꾸미기 우여곡절 1
고백하자면, 나는 홈스타일링이니 인테리어니 아무튼 그 비슷한 모든 집 꾸미는 행위에 영 젬병인 사람이다. 정확히는 별 관심이 없는 쪽에 속했다. 9화에서 나의 집의 역사를 살펴 본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이제껏 집이라는 공간에 특별한 취향을 가질 기회가 딱히 없었다.
어릴 때야 부모님의 취향이 내 취향인 줄 알고 사는 법이고, 내 방을 갖게 되었을 때도 특별히 가구 배치나 컬러감에 신경 쓰는 편은 아니었다. 성인이 되어서 원가족과 독립된 나만의 집을 갖게 된 이후에도 그 공간이 살기에 얼마나 편리하며 보기에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것까지는 생각할 겨를 없이 살았다. 1~2년, 길어야 3~4년에 한 번씩 이사를 가야하는 세입자로서 못 하나 박는 것도 조심스러운 게 당연했다.
단적인 예로 엄마가 차를 팔아 보증금을 대준 그 아파트는 갑자기 해외로 나가게 된 친구에게 승계 받은 것이었는데, 친구가 두고 간 이런 저런 가구나 집기류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그대로 썼다. 심지어 방의 침대 방향조차도 바꾸지 않았다. (한참 나중에서야 엄마가 집에 와보고, 창 옆에 침대가 길게 붙어 있으면 겨울에 춥다면서 침대 방향을 바꿔 주었다. 과연! 창에서 나오는 찬바람을 덜 받아서 더 따뜻하더라.)
그런 내게 갑자기, 100평짜리 대지 위에 면적이 약 25평 되는 2층짜리 단독주택이 주어졌다. 각 방의 쓰임을 정하고, 용도에 맞게 몇 안 되는 가구들을 넣고 나니 일단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완성됐다. 소파나 책상 같은 몇 가지 추가로 필요한 가구와 자잘한 집기류만 사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집 앞 도로에서는 물론이고 넓지 않은 부지 위에 옹기종기 지어진 타운하우스다 보니 건너편 집에서도 집안의 모습이 생각보다 훤하게 노출된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아파트에 살 때도 시선과 햇빛을 가리기 위해 커튼을 달았으니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창문의 개수였다.
창문이 없던 고시원이나 방에만 창이 한 개 있던 그의 자취방은 차치하고서라도, 이전에 살던 방 두 개짜리 아파트조차 창문의 존재가 별 문제 되지 않았었다. 그 아파트는 거실과 큰 방이 긴 베란다로 이어져 있고, 작은 방에도 베란다 딸려 있는 구조였는데, 거실에서 베란다로 통하는 유리문, 큰 방에서 베란다로 통하는 큰 창, 작은 방에서 베란다로 통하는 유리문 딱 세 개만 가려도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집은 1층 거실과 주방에만 창이 세 개나 있었다. 그 외에도 드레스룸과 침실, 다용도실에 창이 한 개씩, 큰 방에는 양 쪽으로 창이 두 개였다. 테라스로 나가는 문도 큼지막한 유리문이라 맞은편 집 사람이 자기네 테라스에 빨래를 널고 있는 게 우리 집 복도에서도 훤히 건너다 보일 정도였다.
단독주택의 단점 중 하나가 고층 아파트보다는 시선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점 아닌가. 그래서 나는 진작부터 “옆집에서 좀 보면 어때, 창이 크고 많으니 시원시원하고 풍경도 잘 보여서 좋지 뭐.’ 하는 태평한 생각이었지만, 그가 당장 커튼을 주문하라고 난리였다. 내가 잠옷 차림으로 집안을 돌아다니거나, 씻으려고 화장실 문 앞에서 옷을 벗을 때마다 밖에서 보이면 어떡하냐면서 기겁을 했다. 어쩌겠나, 그의 정신건강을 위해 커튼을 주문해야지.
바닥에서 천장까지 높이를 잰 다음에 3cm를 뺀 길이로 주문해야 한다느니, 봉 타입이면 10cm는 빼야 한다느니 하는 상세페이지 내용과 후기를 꼼꼼히 살펴보고, 신중하게 주문을 했다. 거실에는 좀 뻔하지만 나비주름이 잡힌 차르르한 재질의 쉬폰 커튼을, 침실에는 노란 꽃무늬가 있는 커튼과 흰색 린넨 느낌의 커튼을 겹쳐 걸기로 했다. 정확히 어떤 공간으로 쓸지 정해지지 않은, 창문이 2개나 있는 큰 방은 내 작업실이 될 확률이 높아 깔끔한 블라인드를 주문했다.
고심 끝에 기껏 고르고 주문한 커튼이 도착했는데, 그가 이번에는 꽃무늬 커튼을 샀다고 타박이다. 본인 취향이 아니고 촌스럽다나? 그럼 자기가 찾아보고 주문하면 될 것을 말이지. 결국 그의 강력한 반발에 꽃무늬가 잘 보이지 않게 린넨 커튼을 보이는 쪽으로 꺼내 걸었다.
쉬폰 커튼은 추석 연휴에 태풍이 겹쳐 2주도 한참 지나 배송이 되어 왔다. 블라인드도 주문제작 상품이라 그런지 정말 드럽게 늦게 왔다. 모든 창문이 커튼으로 가려지기까지, 고민한 시간도 합치면 1달은 족히 걸렸다. 드레스룸 창문과 테라스로 나가는 유리문은 이전에 쓰던 것들을 활용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지금까지도 우리의 창문은 맨몸이었을 거다.
우여곡절 끝에 새로 산 2개의 커튼과 2개의 블라인드, 이전 세입자가 걸어둔 이케아 블라인드와 예전 집에서부터 쓰던 암막 커튼과 암막 천까지 활용해서 그 많은 창문을 다 가렸다. 다들 이렇게 많은 품과 노력이 드는 일을 기쁨으로 하고 있다니 놀라움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심지어 한 번 사서 걸어두고 끝이 아니라, 계절마다 커튼을 바꿔 달아서 분위기를 내는 사람들도 있다니, 정말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싶다.
아무튼,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서 단독주택으로 이주하고자 하는 분들이 있다면, 창의 개수나 위치도 한 번쯤은 고려해야 한다. 아파트야 구조에 따라 창이 없는 방이 있을 수도 있고, 창이 있더라도 외부의 시선에 노출되지 않거나 빛이 많이 들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높아 봤자 2층인 단독주택은 대개 집 안의 모든 창문이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모든 창문에 성공적으로 커튼을 짝지워준 지금, 집 안 깊숙하게 들어온 햇빛이 러그며 소파며 침대를 바삭바삭하게 데우는 모습이나 살랑거리는 바람에 쉬폰 커튼이 하늘하늘 춤추는 모습을 보면 아주 행복하다. 이 맛에 사람들이 인테리어에 힘을 쏟는 거겠지. 마침내 나라는 인간 안에도 집꾸미기 세포가 새롭게 태어난 모양이다. 그러나, 이 세포에게는 무수한 고난과 역경이 기다리고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