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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eavenlyp Oct 18. 2021

소비는 또 다른 소비를 부른다

집 꾸미기 우여곡절 2

창마다 커튼을 드리워 한결 아늑해진 집 안에 가구를 채울 차례다. 우선 오랫동안 위시리스트에만 담아 두었던 소파부터 탐색에 나섰다. 이전 집에 이사하고 얼마 안 되어 유자를 입양했고, 이후로 그 집에 사는 내내 소파를 들이지 않았다. 


사실 이사 직후 중고로 아주 저렴하게 소파를 사긴 했는데, 한창 이갈이를 하던 유자가 불과 몇 주 만에 갈가리 찢어버렸다. 나무 뼈대가 훤히 보이는, ‘소파였던 것’을 대형폐기물로 처리하고서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소파 없이 맨바닥 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유자도 어엿한 성견이고 뭔가를 물어 뜯는 일도 거의 없어졌으니, 새 집에 어울리는 예쁜 새 소파를 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소파란 무엇이냐. 모름지기 눕기 위한 가구인 것. 


장신의 커플이 다리를 뻗고 누워도 여유가 있으면서, 팔걸이가 머리를 올려두기에 적합한 것, 또 넓지 않은 거실 공간에 두어도 부담 없도록 등받이가 높지 않은 것을 찾아 보았다. 색깔은 밝은 베이지색을 원했다. 무엇보다 모듈쇼파였으면 했는데, 모듈쇼파는 티비와 소파를 마주보게 놓아두는 심심한 배치에서 벗어나 다양한 레이아웃을 시도해 볼 수 있고, 혹시라도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거나 가족 구성원이 늘면 모듈을 추가해 그에 맞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요즘 한창 유행이다.)


사실 이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소파는 진작에 있었다. 하지만 파충류 이름이 들어간 회사의 조약돌 디자인 소파는 예쁜 만큼 너무 비쌌다. 모든 자금을 집에 털어 넣은 터라 N백만원을 소파에 쓸 수는 없었다. 불굴의 의지로 검색하고 또 검색해서, 마침내 마음에 드는 소파를 찾아 냈다. 마감이 조금 아쉬운 감은 있어도, 원하는 조건에 모두 부합하면서 N십만원대 가격에 제주도로 배송까지 해주는 제품은 그 것 밖에 없었다.


배송되어 온 소파는 사진으로 볼 때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다. 특히 좌방석이 단단한 듯 하면서도 폭신해서 몸을 잘 받쳐 주고, 공간도 깊고 넉넉해서 앉았을 때나 누웠을 때나 편했다. 가로 길이도 거실 길이에 딱 맞춘 것처럼 알맞게 떨어졌다. 


유자도 새 소파를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다른 곳에서 잘 놀고 쉬다가도 잘 때가 되면 꼭 소파로 올라갔다. 원래 침대에서 같이 자다 이 집에 이사를 온 후로 잠자리를 분리해서 유자는 1층 자기 집에, 인간들은 2층 침실에서 자기 시작했는데, 인간들의 침대를 대체할 좋은 잠자리를 찾은 것처럼 소파 팔걸이에 척하니 머리를 올려 놓고 코까지 골면서 잤다. 


유자가 소파를 좋아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유자의 구수한 꼬순내가 패브릭 재질의 소파에 배어 드는 것은 곤란했다. 어쩔 수 없이 3만원 정도 하는 천으로 된 소파 커버를 주문했다. 커버를 씌우니 털이 묻어도 커버만 벗겨서 힘차게 털어주면 되고, 오염이 되거나 실내에서 유자 냄새가 많이 난다 싶을 때는 간단히 물세탁을 하면 되었다.


모든 것을 갖췄다 싶었는데, 이번에는 바닥에 깔린 러그가 거슬린다. 유자가 미끄러지는 것도 막고, 소파 없는 거실의 허전함을 채우려고 이전 집에 살 때 회색 러그를 샀는데, 밝은 베이지색 소파와 영 어울리지가 않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거실을 거의 덮을 수 있는 큰 사이즈의 베이지색 러그를 7만원 정도에 샀다. 비슷한 컬러감의 러그가 바닥에 깔리니 이제야 심신의 안정이 찾아 온다. 


맘에 드는 소파를 하나 샀을 뿐인데 소파 커버가 필요해지고, 멀쩡한 러그도 바꾸게 되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 소파 가격의 대략 1/7을 부수적인 소비에 썼다. 소파가 있고 커튼이 나부끼고 러그가 깔린, 호사스러운 거실을 갖게된 대가로 통장을 내준 것이다. 커버도 몇 장 더 사고 쿠션도 사서 놓고 하면 더 많은 소비를 하게 되겠지. 


비단 소파뿐만이 아니다. 이제까지 대강 살았던 것들도 새 집으로 이사를 오니 갑자기 눈에 거슬린다. 없어도 잘 살았는데 갑자기 필요하게 느껴지는 것들도 많다. 이전 화에서 다룬 커튼은 두 말 할 것도 없고, 화장실이나 다용도실에서 신는 슬리퍼나 발매트 같은 것들도 두 배로 필요하다. 넓은 드레스룸이 생기니 왕자 행거 대신 쇼룸 같은 데 두는 예쁜 행거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까지 멀쩡하게 잘 써왔고 지금도 아무 문제 없는, 그가 손재주를 부려 만들어 준 아일랜드 식탁도 왠지 바꾸고 싶어진다. 


결국은 집이라는 큰 소비가 계속해서 또 다른 소비를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껏 관심과 애정을 주고 가꿀 공간을 만나지 못해 억눌려 온 소비 욕구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마이너스를 향해 달려가는 통장 잔고와 쌓이는 카드 값을 보며 정신을 차려야 할 시점이 빠르게 와 버렸다.


소유할수록 욕망과 번민이 커지는 법이로구나. 


무소유의 진리를 되새기며 소비욕과 싸워야 할 때다. 이제 막 태어난 집꾸미기 세포는 오늘도 ‘오늘의집’ 어플을 뒤지고 있지만, '소비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소비로 이어진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집에 물건을 들일 때는 신중 또 신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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