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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헤브 Dec 25. 2024

모든 아픈 이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상실, 투병, 재활, 이별, 경제적 어려움, 관계, 외로움, 분노와 우울

울산 앞바다 출렁다리를 바라보며 12월 20일


이 글을 모든 음지에서 고통받고 있는 분들께 바칩니다.



사랑하는 이를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상실했거나,



심혈관질환, 암투병, 당뇨병, 만성호흡기 질환, 정신건강장애, 알츠하이머를 비롯한 치매, 간질환, 콩팥질환 등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앓고 있는 질병을 가지고 있는 분들께 이 글이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저희 아이와 같은 지체 발달 장애인과  CRPS(복합부위통증증후군), 당원병, 에인절만 증후군과 같은 희귀 질환을 앓고 계신 분들께 제 마음이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크리스마스, 성탄의 아침 새벽 5시부터 현 글이 작성되고 있다는 점을 밝힙니다. 전 세계에서 산타클로스를 기념하는 이때에, 저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시작합니다.



특별히 이 글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글의 주인공인 투병 중인 작가님과 그 가족분들, 그분이 사랑하는 분에게 제 글이 언제든 전해지면 좋겠습니다.





지난주 금요일 오전 10시 12분 서울-울산행 기차에 올랐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울산이라는 곳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기 앞서서, 먼저 한 가지 사실을 나눠야 하겠습니다. 저희 집에는 대형 칠판이 있습니다. 학원에서 사용하는 크기의 대형 칠판입니다. 그곳에 저는 브런치 작가님들 중에 투병을 하시거나 상실을 해서 고통 중에 있거나, 자살이나 상실의 두려움 속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형편에 놓인 작가님들의 필명(혹은 성함)을 적어 놓았습니다. 제 자신 스스로가 무엇을 자주 보면서 학습하거나 기억하려는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분들의 이름을 자주 보고 기억하고자 기록해 두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 필명을 지을 때도 고심 끝에 아헤브(히브리어 아하브 혹은 아헤브)로 지었습니다. 이는 자기 자녀를 향한 무한한 아버지의 사랑을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이며, 사랑하다는 의미의 동사의 형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실행해 옮긴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지요. 브런치를 시작한 것도,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작년 이 맘 때부터 시작이 되었고, 실제로 글을 제대로 쓰기 시작한 것은 올해 3월 말, 기쁨이(제 아들)의 하나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빠 나는 장애인이에요? 친구들이 그러는데, 나는 장애인이래. 그런데 장애인은 정확히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아빠?"



그 말을 들은 날 저녁, 저는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재운 이후, 밤 11시 즈음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서 새벽 4시까지 하나의 글을 썼습니다. 처음 브런치 북을 시작한 날이 그날이었고, 다음 날은 아이의 10번째 생일날이었습니다. 신기할 정도로 많은 분들이 그 글을 좋아해 주셨고, 저는 그 글을 적으며 지난 과거의 기억들을 소환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겪은 수많은 아픔들이 모두 아이를 위해 벌어졌는지도 몰라'



'하나의 커다란 퍼즐의 조각처럼 내 인생과 이 아이의 인생이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도 몰라'



그런 생각으로 아이를 생각하며, 몇 달간 30화의 브런치 북을 써 내려갔습니다. 그 사이 아이는 공공장소에서 커다란 화상을 입었고, 누가 화상을 입혔는지도 모른 채 며칠이 흘러갔습니다. 그런 연유로, 저는 심각한 수면 장애를 겪기 시작했고, 몇 년 동안 괜찮았던 턱 장애가 굉장히 심해지는 결과가 초래되었습니다.


어제 검진받은 병원에서, 제가 한쪽 턱으로만 음식을 씹는다는 걸 단 번에 의사 선생님이 알아챘습니다. 그리고는 "제게 통증이 있겠지만, 양쪽 턱을 사용하시면 좋겠어요. 어쩌면 턱이 변형이 일어나 옆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습니다" 라는 이야기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이토록 장황하게 말씀드린 이유는,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의 단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장애로 고생하는 아이를 돌보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사건건 아이와 관련된 모든 일에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며, 그 아이가 차츰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부분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제 주위에 수많은 환자들과 그 가족들을 지켜보았습니다. 어느 분들은 저희 보다 더 위중한 경우도 있었고, 또 다른 경우엔 경미한 상황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가족이 그 모든 시절 동안 아팠고, 가족의 질병과 사고가 낫기까지 밤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는 걸 보고 또 보았습니다. 참 오랜 시절 제 가슴이 아팠습니다. 대신 아파줄 수 없는 가족의 질병과 고통을 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오랫동안 묵상하고 고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와중에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 하나가 주어졌고, 전혀 모르던 수많은 분들의 개인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칠판에 그분들의 이름을 적기 시작했고, 제가 믿는 하나님이 성경에 가르치시는 대로 최대한 많은 시간 그분들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것으로 대신 아픈 마음을 주님께 토로했습니다.



아들 기쁨 이가 화상을 당하고 약 3개월 동안 굉장히 힘들어했습니다. 밤마다 너무나 아파했고 아내는 잠을 오랫동안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때 깨달은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겪지 않으면 다른 질병이나 장애, 사고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한들, 또 다른 질병과 고난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의 심정을 아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수면 장애나, 공황장애, 조현병 등의 정신 장애를 포함한 그 모든 고통에 대한 해석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일종의 깨달음이었습니다


그 경험을 토대로 브런치 작가님들의 삶을 최대한 깊게 들여다 보고자 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암투병으로 고통받는 작가님을 찾아가는 의사결정을 하게 되었고, 그분이 어디에 계시든 허락을 해주시면 가겠다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한 작가님이 계신 파주로 가서 작가님과 3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듣고, 또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날은 유독 비가 세차게 내린 날이었고, 저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작가님의 가슴 아픈 이야기와 저의 아이의 상황이 오버랩돼서 많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습니다. 작가님은 제게 소중한 분으로 마음 한편을 채우셨고, 제게는 또 다른 작가님들의 상황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작가님들 중에는 저희 아이와 비슷한 장애를 가진 분도 계셨고, 그분의 이야기를 읽으며 기쁨 이에게 희망과 많은 격려를 해줄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아이를 데리고 그분을 직접 만나고 싶기까지 합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지난 목요일, 기도 중에 한 작가님의 글을 보았습니다. 이미 그분은 오랜 시간 동안 저의 기도제목에 있는 분이셨고, 글을 읽는 중에 그분의 소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왔습니다. 기도를 드리며 투병으로 고통당하는 그분께 허락을 해주신다면 제가 울산에 방문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습니다. 안타깝게도 심한 고통과 투병 생활로 작가님은 글을 드문드문 확인할 수 있는 형편으로 여겨졌습니다. 제가 울산에 도착할 때까지 글을 보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금요일 아침이 시작되었고, 아내와 긴히 상의를 했습니다.


"자기야, 내가 계속 기도하고 있는 분이 있는데, 그분 병원이 울산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


"그런데, 내 마음속에 그분을 직접 찾아뵙고 기도를 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계속 올라와"


"이게 하나님의 뜻일까? 아니면 내 욕심일까?"


"그렇다고 아픈 형편에 있는 모든 사람을 만날 수 없는데, 서울에서 울산까지 가는 게 우리 상황에서도 적절할까? 더욱이 오늘은 내가 당신을 대신해서 재활병원에 가야 하는 날인데, 가게 되면 자기 몸은 괜찮을까?"



"자기가 기도하는 중에, 주님이 마음을 주시는 것 같다면, 고민하지 말고 표가 있다면 다녀오세요"


"어디 모텔이라도 잠을 자고 와도 좋으니, 우리 걱정 말고 얼른 표부터 찾아봐요"


평소 이용할 일이 없던 코레일 사이트에 들어가 표를 확인해 보니 10시 12분 차량이 있었고, 저는 부리나케 책가방을 들고 뛰어나갔습니다. 단 30초만 늦었어도 기차를 놓쳤을 상황이었기 때문에, 뛰고 또 뛰었습니다. 만 분의 일의 확률로 출발하려던 KTX 승강장에 10시 12분에 도착을 했고, 온몸에 땀을 흘리며, 쌕쌕 거리며 제 자리를 찾아 앉았습니다



그러나, 작가님과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유일하게 말을 걸 수 있는 브런치 답글란에 글을 계속 남겼지만 투병 중인 작가님이 글을 볼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 같아, 울산 병원에 도착해서 그분을 수소문해서 찾아보고, 보호자 분이라도 만나고 오면 좋겠다는 바람만 가지고 울산을 향했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도착한 울산에서, 병원은 생각보다 먼 곳에 있었습니다 또다시 리무진을 타고 1시간 10분을 가서,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고, 병원 도착 10분 전에, 기적과 같이 작가님이 제 글을 보고 답글을 달았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작가님은 몸이 성치 못해 움직일 수 없었고, 대신 작가님의 보호자 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보호자분을 보는데 저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있던 보호자님과 대략 20-30분 정도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작가님과 통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제게 주어졌습니다. 그분은 다행히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그 분과 대화 끝에 수화기 너머로 함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보호자님과 가벼운 포옹을 하면서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는 말을 하고 병원 주위를 맴돌다, 늦은 점심을 먹고 병원을 나서게 되었습니다.


작가님은 울산에서 즐거운 일이 있기를 바란다는 따뜻한 말씀을 전해 주셨고, 보호자분도 울산까지 왔으니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조심히 올라가라는 따뜻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병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있다는 걸 알게 되어, 그렇게 출렁다리가 있는 대왕암공원이라는 곳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병원에 있는 아내와 바로 연결이 되지 않았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 제가 지금 울산에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짜고짜 어머니께 지금까지 저를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하고, 아들이 꼭 효도하겠다는 말씀을 뜬금없이 드렸습니다. 작가님의 보호자분을 만나고, 젊은 작가님과 통화를 하면서 아무래도 그분의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란 생각을 통화를 하면서 제 자신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울산에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15년 만에 어느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분이 울산에서 담임 목회를 하고 계시다는 걸 들은 기억이 났기 때문입니다. 15년 만에 목사님을 뵐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 속에서 무작정 드린 전화였지만, 교인 심방을 하는 상황이라는 문자와 함께 바로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작가님이 있는 병원에서 목사님과 연락이 다시 닿았고 목사님을 15년 만에 만날 수 있는 갑작스러운 기회도 선물 받았습니다. 짧게 대왕암공원을 찍다시피 방문하고, 목사님이 계신 곳으로 물어물어 가며 겨우 도착했습니다. 목사님과 근 16년 만에 만남이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는 제게 저녁을 대접해 주셨습니다. 저는 한 손에 빵을 들고 찾아뵈었고요.



문제가 있다는 걸 밥을 먹다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예약해 놓은 기차 시간과 금요일 저녁 울산 교통 상황이 맞물려 기차를 놓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리무진 버스가 교통 상황으로 30분가량 지연되면서, 1시간 30분 정도로 소요시간이 찍힌 앱의 상황을 보고, 기차표를 임박해서 취소해야 했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편했습니다. 계획에 없던 여행이 되었지만, 2024년 12월 20일은 제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앞으로 그 작가님을 다시 뵐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작가님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 또 상황이란 게 항상 생각하는 데로 맞아 들어가지는 않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호자님과의 대화 만으로도 너무나 잘한 결정이었다는 걸 내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보호자님의 배려로 그리고 작가님의 허락으로 통화를 하면서, 질기고 질긴 인생사의 험난함을 고스란히 수화기 너머로 느끼며, 인생이란 누군가에겐 참으로 아프고 시린 여정이구나 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성탄일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의 탄생일로 기념하는 날입니다 실제로 그분이 이 날 태어나지 않았다는 말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기 예수의 탄생이 인류에 끼친 영향력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지대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교, 구교로 구분되는 기독교와 천주교를 통해 문명의 많은 부분이 발전되었고, 우리나라도 선교사님들이 이 땅에 들어오면서 의료와 교육 관련 병원과 대학이 여럿 설립되었습니다.



1885년 4월 10일, 미국 선교의사 호러스 뉴턴 앨런(H.N. Allen)에 의해 설립된 광혜원은 한국 최초의 근대식 서양 병원이었습니다 <널리 은혜를 베푸는 집>이라는 의미를 가진 광혜원은 2주 후 제중원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이는 후에 연세대학교 설립과 그 정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인정을 하든 그렇지 않든 기독교가 사회에 미친 영향력은 굉장히 놀라웠고 21세기를 지나는 현재까지도 전 세계에는 수많은 선교사들이 파송되어, 선교활동부터 NGO 활동까지 폭넓게 가난한 여러 나라의 경제, 문화, 교육, 종교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사랑은 '동사'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을 뜻합니다. 입으로 전하는 사랑은 그 자체로도 커다란 함의를 가지고 있지만, 미치는 영향도에 있어 상당히 제한적입니다. 멀리까지 그 역동성이 전해지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 요한일서 3장 16절에는 아래와 같이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울산을 갈 수 있었던 것은, 다른 게 아니었습니다. 제게는 이 말씀이 중요한 말씀이었고, 브런치 작가님의 고통은 실재하는 현재 진행형의 고통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간도 몸의 통증과 마음의 통증으로 밤을 새운 수많은 분들이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바라기는, 적어도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사랑을 함에 있어 '동사'의 사랑을 실천하는데 적극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믿는 분들이라고 한다면 자신의 신앙에 기초해서 '지금', '오늘', '현재' 내 곁에 있는 '한 사람'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세상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자각하고, 할 수 있는 만큼, 할 수 있는 대로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울산에 계신 작가님이 나중에라도 이 글을 직접 읽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메리크리스마스! 작가님과 작가님이 사랑하는 모든 분들의 평온과 회복을 위해 기도합니다 내년 2025년에는 좋은 소식이 들리고, 기적적으로 회복되고 치료되는 놀라운 일들이 전해지기를 바라겠습니다 많이 힘드시겠지만 조금만 더 힘을 내주세요"



"작가님께 제 마음을 전해 드리기 위해 일어나자마자 새벽 첫 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부디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지라도 절망하지 마시고 힘내세요. 많은 작가님들과 독자님들이 작가님을 기억하고 기도하고 응원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이 땅에 전쟁과 기근으로 고통당하는 모든 사람들과 사랑하는 분을 잃고 실의에 빠진 가족분들, 질병과 장애, 관계와 경제적 손실로 고통받는 모든 분들께 동일한 마음으로 진심 어린 평안을 빌어 드리고 싶습니다



부디 힘내세요!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4년 12월 25일 새벽 아헤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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