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다.

by 전소

소중한 주말이 가고 다시 월요일.

회사 메일함을 열어보니 주말 내 쌓인 메일이 가득하다.

그 메일의 대다수는 같은 팀 동료가 보낸 것으로, 주말 내 일한 티를 팍팍 내며 임원 및 사장까지 모두 참조에 넣어 메일을 보냈다.

임원 및 사장은 또 그 메일에 회신하면서 수고 많다 고생한다 우쭈쭈 일색이다.

순간 배알이 꼬였다.

이 자식은 그 메일을 꼭 주말에 써야 했을까?

왜 금요일은 하루 종일 메일 한통 없다가 굳이 토요일 일요일에 메일을 쓰는 걸까.

심지어 급한 내용도 아니다.

월요일에 출근하고 써도 충분할 거 같은 굳이 굳이 토요일 일요일 저녁에 메일을 보낸다.

회사에는 꼭 이렇게 동네방네 일한 티를 내는 놈들이 있다.


나는 회사일은 최대한 업무 시간 내에 집중해서 마무리하려고 한다. 그래서 가끔은 화장실 갈 시간도 촉박하다.

이런 놈들은 업무 시간에는 설렁설렁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이빨이나 까고 업무 시간 외나 주말에 메일을 와다다 보낸다.

나는 일할 때 최대한 윗사람이 신경 쓰지 않도록 일 처리하는 것을 덕목으로 배웠고, 그래서 굳이 실무자 간의 메일에 윗사람을 껴 넣지 않는다.

이런 놈들은 실무자만을 위한 메일에도 윗사람을 굳이 굳이 참조에 걸어서 일하는 티를 팍팍 낸다.

나는 업무 보고도 미팅의 효율화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것 위주로 콤팩트하게 한다.

이런 놈들은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임원, 사장 다 불러서 보고를 한다.


회사에서는 이런 새끼들이 잘 된다.

업무 시간 동안 이 사람 저 사람과 커피 마시며 이빨 까는 것을 네트워킹이라고 하고

메일에 굳이 굳이 윗사람을 참조 넣어 자신의 업적을 알리는 것 또한 투자라고 한다.

즉 자기가 한 일을 만천하에 떠벌리는 것이 회사 생활의 키라고 한다.

나는 이런 것들이 도무지 잘 맞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나의 태도에 윗사람들은 ‘리더십 부족’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위로 올라가려면 묵묵히 일을 잘하는 것 따위는 덕목이 될 수 없고

더 나대고 더 설쳐야 한다는데 - 나는 도무지 그게 잘 되지 않고, 아니 솔직히 말하면 잘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회사에서 나의 위치는 점점 더 작아지고, 휘청거린다.

예전에는 내가 언제든 회사를 떠날 수 있고 회사가 나를 잡는 입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회사가 언제든 나를 버릴 수 있고 내가 회사에 잘 보이기 위해 전전긍긍해야 하는 입장이라는 위기의식이 자꾸 든다.


뭔가 더럽다.

한 때 회사 밖의 일들- 누수, 아랫집 집주인, 소송, 가압류 등등- 을 통해 엄청난 충격을 받으며

그에 비해 회사는 아무리 갈등이 있어도 기본적인 상식과 예의가 통하는 천국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뭐랄까 - 회사 밖의 사건 사고들은 무식하고 과격하고 또라이 같은 것이나

회사 내의 갈등은 표면적인 상식과 예의를 차리나 참 미묘하게 더러운 것 같다.

결론은 둘 다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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