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단 콤보 징징징

by 전소

얼마 전 변호사 사무실에 가서 변호사 위임계약을 했다.

그동안은 전화로만 연락했었는데 처음으로 법무법인에 가서 변호사님도 직접 뵙고 사건에 대한 이야기도 드리기로 했다.

서초동에 있는 법무법인은 생애 처음 방문하다 보니 좀 기대가 컸던 거 같다.

TV에서 보아 왔던 변호사 사무실 정도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빤딱빤딱한 외관을 기대했었는데 - 실제로는 보통 사무실보다 더 작고 허름하고 낡아 보였다.

아마도 땅값이 비싼 곳에 있으니까 그런 거겠지??? 설마 여기가 실력이 없어서 이런 건 아니겠지???

슬슬 가동되는 마음속 불안이를 애써 무시하며 변호사님과 미팅을 시작했다.

변호사님은 예상대로 내가 보낸 자료는 읽어보지 않으셨다.

하지만 적어도 솔직하게 ‘보지 않았다’고 말해주셨기에 용서하기로 했다.

자료를 보지 않으셨기 때문에 어떻게 진행할지 구체적으로 나눌 수가 없어서 그냥 위임계약서 도장만 찍고 나왔다.

서초동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고 긴 여정 속에서 나는 녹초가 되어 버렸다. 날은 또 어찌나 더운지 지하철에 내려서 걸어오는 사이 더위를 먹어버렸다.


그리고 자연스레 생각난 부동산.

서울에 있는 집에 살았다면 서초동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사이에 이렇게 더위를 먹지도 않았겠지…

며칠 전 발표한 정부의 정책은 마치 서울에 집을 사고 싶어 하던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감히 니 따위가 어딜 넘봐!!’라는 듯이 나를 막아섰다.

처음에는 누수에, 가압류에, 이제는 정책까지 누가 계략이라도 꾸미는 듯이 서울에 집을 사는 건 더욱 요원해졌다.


안 그래도 낙심한 멘탈에 마지막 펀치를 날린 것은 얼마 전 진행된 사내 포지션 면접이었다.

현재 담당하고 있는 직책이 아무런 성장도 변화도 없어 답답했던 찰나 새로운 포지션이 생긴 것이다.

마침 내가 해오던 업무와 비슷한 영역이고, 내가 잘해왔던 일이니까 자신감 있게 어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차가운 로봇 같은 면접관 앞에서 내 자신감은 붕괴됐고 어리버리한 답변만을 떨구게 되었다.

면접관은 어리버리한 내 답변을 확인사살하듯 하나하나 난도질했다.

내가 답을 하면 -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닌데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는 코멘트를 남긴 후 -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처음에는 ‘엇 저기요 그런 뜻이 아니고’라고 면접관의 코멘트에 정정을 했으나 매우 기분 나빠하는 티가 역력해서 그다음부터는 일일이 정정하기도 뭣해서 그냥 넘어갔다.

면접을 마치고 나자 자괴감이 몰려왔다. 나의 말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 버리는 면접관도 짜증 났고, 거기에 일일이 대응해하지 않고 그냥 넘어간 나도 짜증 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감 없고 어리버리했던 내 모습이 가장 아쉽다.

면접을 보기 전에는 그래도 지금까지의 나의 경력과 경험들이 큰 자산이 되어 줄 거라고 믿었는데…

어느새 나는 현재 자리 말고는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 걸까.

아니 현재 자리도 지키기 어려운 상태인지도 모른다.

이제 회사원으로 나의 경쟁력은 정말 별 볼일 없어진 거 같아 스멀스멀 위기 위식이 발동한다.


남들은 자기 계발하느라 바쁜 와중에 나는 멀리서 출퇴근하느라 길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다 쓰고, 또 이런 욕 나오는 소송까지 준비해야 한다.

다 실패한 것만 같다. 일도 투자도 개인적인 삶도.

오늘은 삼단 콤보로 우울하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신과를 다니며 겨우 잠에 들었는데 지금은 약이 없어도 하루하루 살 수 있잖아.

그리고

소송은 인생 어느 즈음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사건사고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잖아.

그리고

면접은 욕 나오는 경험이었지만, 아직 일할 자리가 있잖아.

그리고

부동산은 어쩌겠어. 그냥 내 집이 아닌가 보다 하고 - 뭐 서울은 아니지만 지금 살 곳이 있잖아.


자동으로 재생되는 불행의 노래 옆에 또 긍정의 노래가 재생된다.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 건가.

불행과 긍정의 노래를 연거푸 재생하면서.

아직은 괜찮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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