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들

by 전소

아침저녁으로 이제 제법 선선하다.

숨 막히게 찌던 더위가 어느 순간 사그라지며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새삼 깨닫는다.

쉽지 않은 한 해였다.

난생처음 겪는 무시무시한 사건 사고에 대응해야 했고 정신과 치료도 받았다.

이 모든 것은 아직 진행 중이고 앞으로 갈 길도 멀다.

그럼에도 바람이 선선해질 때까지 살아냈음을 위로한다.


그 시간들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작은 것들의 도움이었다.

집 앞의 산책

향기 좋은 비누

시원한 바람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뭇잎

점점의 나뭇잎 사이로 비취는 햇살

이것들이 나의 불안과 우울의 무게를 나눠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과거 고통의 기억

현재의 고통은 과거의 고통을 떠올리게 했다.

처음에는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분노했다가 -

어느 순간

아, 전에는 지금보다 더 힘들었는데도

살아냈다-라는 자각은

지금의 고통도 살아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되어 잔잔히 내렸다.


이렇게 작은 것에 집중하여 산 적이 있었을까.

늘 당장 급하고 중요한 것들에 집중하느라 그 외 것들은 무시하기 십상이었는데-

삶이 무너지는 순간에는 다시 작고 고운 것들에 눈을 맞추고 한 걸음을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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