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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현 May 08. 2024

6. 나도 아들이 있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아들이 있었다...

나도 아들이 있었다.



결혼하고 얼마 후 임신했다. 시부모님부터 남편까지 모두 아들을 기대했고, 나도 그들의 바람대로 아들이길 바랐다. 모두가 아들이길 바란 아이는 출산 직전까지 가로로 누워 제 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74년 그 시절, 자연분만이 아닌 제왕절개는 내가 가진 폐물을 다 팔아야 가능할 만큼 비싼 수술이었다. 결국 난 결혼반지, 목걸이까지 다 팔아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그런데... 내 재산을 다 팔아서 낳은 아이가 딸이었다. 남편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고, 시부모님도 아이를 보고 웃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첫딸은 살림 밑천이라며 시부모님이 아이와 눈을 마주치기 시작했다.


큰딸은 유난히 많이 울었다. 등에서 내리기만 하면 울어, 24시간 고 일하고, 밥 먹고, 화장실 가고, 잠을 잤다. 잠 한숨 못 자는 날도 많아 힘들었지만, 아이에게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진 않았다. 늘 어디가 불편한지 묻고 또 물을 뿐... 그러나 남편은 달랐다. 우는 아이 소리가 듣기 싫다며 내게 화를 냈다. 하루는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우는 아이를 이불에 둘둘 말아 이불장에 넣어둔 적도 있었다. 결국 난 아이가 울면 등에 업고 집을 나와 동네를 돌고 또 돌면서 큰 애를 달랬다.


2년 후 둘째를 가졌다. 이번에는 시아버지가 용 한 마리가 날다 당신의 팔을 베고 눕는 꿈을 꾸었다며 분명히 아들이라고 잔뜩 기대를 했다. 나도 큰 애 때와는 달리 고기가 당기고, 배가 옆으로 둥그스름해 분명 아들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온 가족의 기대 속에 낳은 둘째도 딸이었다. 시아버지는 기대가 큰 만큼, 실망이 커 둘째가 돌이 될 때까지 쳐다보지도 않았다. 시아머니도 이유 없이 둘째를 미워했다. 모두가 자기를 싫어하는 걸 아는지 둘째는 태어나서 잘 울지도 않고, 혼자서 잘 놀고, 잘 먹으며, 잘 컸다.


아무도 관심 없는 두 딸을 우리 엄마만 나를 도와 사랑으로 키웠다. 엄마는 내가 시댁에서 구박받는 것이 서러워 더 나를 챙겼고,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빨래며 청소를 몸 아끼지 않고 도와주었다. 그런 엄마가 없었다면, 그 시절 그 설움을 어디에도 풀지 못해 한이 맺혔을지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는 계속 셋째를 낳았으면 했다. 셋째를 낳아야 된다는 건 알지만, 또 딸을 낳을까 두려워 피하고 싶었다. 시어머니는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아들 낳는 약이라며 수시로 약을 해주었다. 시간이 지나 둘째와 4살 터울 나는 셋째를 가졌다.


셋째는 내가 태몽을 꾸었다. 꿈에서 돼지 세 마리가 나를 졸졸 따라오더니, 그중 한 머리가 치마폭에 폭 안겼다. 돼지꿈은 아들이라지만 작고 귀여운 돼지라 혹시 또 딸일까 걱정했다. 내가 셋째를 임신하자 나보다 우리 엄마가 걱정하며, 매일 새벽 정화수를 떠놓고 내가 아들 낳기를 빌었다. 그렇게 모두의 걱정과 기대 속에 셋째를 낳았다.

아들이었다. 세상에 내가 아들을 낳았다. 시아버지, 시어머니는 장남이 장남을 낳아 대를 이었다는 기쁨에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을 찾아왔다. 생전 자기 돈으로 뭔가를 산 적 없는 남편도 과일을 들고 병원에 왔다.

동네 사람들은 딸들이 동네 한 가운데 서서 그 비싼 바나나를 빨아먹고 있는 걸 보면서 내가 아들 낳은 걸 알았다고 했다. 그들도 우리 남편을 알기에 아들 낳은 정도의 기쁜 일이 아니면 딸에게 바나나 사줄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중에 딸들은 바나나 먹은 감동을 내게 전했다. 태어나서 처음 먹은 바나나가 너무 맛있어서 혀로 핥아먹고, 입안에서 녹이며 아껴먹었다고... 그 뒤로 난 돈이 조금만 생기면 남편 몰래 딸에게 바나나를 사 먹였다.


시아버지는 귀하게 낳은 아들이 오래오래 살기를 바라며 이름도 시대에 맞지 않는 장수하는 이름으로 지어 주었다. 역시 그렇게 낳은 아들이 이뻤고, 딸과는 또 다른 행복을 느꼈다. 시를 읊어주면 하루 만에 시를 외웠고, 노래를 가르치면 금세 따라 하는 아들이 천재 같았다. 그런 아들에게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었다. 그게 잘못의 시작이었다.


나는 옆집 점방(지금의 마트) 주인에게 아들이 와서 먹는 받지 말고, 그냥 가져가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매일 가져가는 걸 장부에 달아두면 저녁에 한꺼번에 계산해 주겠다며, 아들이 먹고 싶은 걸 눈치 보지 않고 먹게 해 주었다.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똥을 닦아주고, 중학생까지 비싼 가족탕을 데리고 다니며 내가 직접 때를 밀어줬다. 그때는 몰랐다. 몰라도 너무 몰랐다. 귀하면 귀할수록 원 없이 해주는 게 사랑인 알았다.


남편은 늘 아들 아들 노래를 불렀지만, 정작 아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몰랐다.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 한 번을 가본 적이 없었다. 

남편과 사는 동안 딱 한번 이혼을 결심하고 법원까지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남편은 처음으로 내게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고 빌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아들 때문이었다. 아들과 헤어질 수 없고, 아들 때문에 이혼할 수 없다고 했다. 남편의 아들 사랑은 그저 마음에만 있었다.    


아들은 세상에 원하는 건 마음만 먹으면 다 얻을 수 있다 생각했고, 가만히 있어도 엄마가 다 알아서 챙겨준다고 믿었다. 웃기만 해도 모든 가족이 우리 장남이라며 좋아했고, 잘못을 해도 누나들이 대신 혼나는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결국 아들은 욕심은 많지만 할 수 있는 게 적고, 마음은 나약하고 여린 아이로 그렇게 자랐다.




엄마에게는 아들이 있었다. 둘도 없는 소중하고 귀한 아들이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그 아들이 엄마를 아프게 했다. 결국 아들은 엄마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엄마에게는 그런 아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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