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는 큰 키 때문에 초등학교 3학년 때 수영선수로 발탁되어 학교에서 ABCD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세상 속에 던져졌다. 당시 운동하는 아이들에게 학교는 타이틀에 불과했고, 그저 학교, 지역, 국가의 대표가 되기 위해 끝없는 훈련 속에 내몰렸다.
새벽에 일어나 체력단련 훈련을 시작으로 낮에는 쉼 없이 수영장 레일을 돌고, 저녁엔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녹초가 되어 들어오는 딸을 보면 운동을 그만시켜야 하나 늘 고민했다. 그러나 각종 대회에서 메달을 걸고 오는 딸을 보면 고민의 시간들을 잊어버렸다.
둘째 딸은 어릴 때부터 운동을 한 탓에 날씬한 몸매에 키가 크고, 인물도 좋았다. 어디를 가도 딸 이쁘다는 소리를 들으니,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나 실상은 얼굴을 제외하고는 성한 곳이 없었다. 당시 악랄하기로 유명했던 수영 코치는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물 묻은 수영복을 입은 아이들의 몸을 각목으로 때렸다. 가끔은 피와 수영복이 엉겨 붙어 떨어지지 않을 때도 있었다. 나는 매일 피멍으로 얼룩진 아이의 몸에 연고를발라주며 눈물을 삼켰다.
둘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실업팀으로 들어갔다. 딸은 더 이상 운동하기를 싫어했지만, 그동안 애쓴 시간과 실업팀에서 나오는 적지 않은 월급 때문에 쉽게 그만두지는 못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채 1년도버티지 못하고 아무도 몰래 운동을 그만두고 집을 나가버렸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나와 남편은 딸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하며다녔다.
한 달 뒤 타지에서 식당 아르바이트를하고 있는 딸을 찾았다. 집에 가자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다신 운동하고 싶지 않다며, 혼자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며 버텼다. 나는 딸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어린 나이에 모진 고생을 한 딸임을 알기에 이제는 원하는 대로 살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잘할 거라 믿었다.
남편은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그동안 우리가 너를 위해 얼마나 많은 돈과 노력을 투자했는지 이야기하며 화를 냈다. 그러나 딸은 더 이상 어린아이가아니었다. 결국 남편도 포기했다.
이후 둘째 딸은 타지에서 혼자 살며 가끔 전화로 안부만 전했다. 그런데 딸이 임신했다. 타지에서 만난 착하고 잘해주는 나이 많은 오빠에게 온 마음을 줘 버린 것이다. 남편은 집안 망신이라며 고함을 질렀고, 딸은 울면서 잘 살겠다고 빌었다. 나는 이 모든 게 다 내 죄 같았다. 그때 딸이 운동하기 힘들어할 때 그만두게 했다면, 아니 처음부터 운동을 시키지 않았다면 지금쯤 대학생이되었을 딸을 생각하니불쌍하고 미안했다.
딸은 결혼하겠다며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는 딸의 결혼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임신으로 배가 부른 상태라 아이를 낳고, 세 달 후 결혼식을 올리기로 약속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딸이 아이를 낳았다. 나는 빨래방을 운영하며 몸이 부서질 듯 힘들었지만,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은 딸을 위해 내 몸을 챙길 겨를이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 늘 새 밥에 미역국을 끓이고, 몸을 보호할 수 있는 갖가지 반찬을 해서 먹였다. 그리고 밤에는 딸이 편히 잘 수 있도록 손주를 데리고 와 돌봤다. 힘들었지만, 처음 안아 보는 손주는 천사 같았다.
"우리 손주 이쁘다. 우리 손주 잘잔다."
밤마다 손주를 안고, 업고 그렇게 한 달을 보냈다.
한 달 뒤 산후조리를 마친 딸이 나를 안고 눈물을 흘렸다.
"엄마, 고마워. 이제 집에 가서 애 잘 키우고 잘 살게."
그렇게 딸은 집으로 갔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쓰러졌다. 정신없이 일하고, 손주까지 돌본 탓에 심장판막증으로 약을 먹어야 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수시로 팔이 저렸지만, 단순히 근육통으로만 생각했다.
딸은 모든 게 자기 탓이라 울며 잘못했다고 빌었다. 네 탓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땐 말이 나오지 않아 전하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뒤 둘째 딸의 결혼식이었다. 딸과 가족들은 나 때문에 결혼식을 미루고 싶어 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준비가 끝나 있었고, 사돈 쪽도 미룰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둘째 딸의 결혼식 날, 병실에 큰딸과 같이 있었다. 큰딸은 간병을 핑계 삼아 내 옆에 있었지만, 친척들이 시집 안 간 언니가 동생 결혼식 보는 건 좋지 않다며 오는 걸 꺼렸다. 우리 둘은 말없이 앉아 시계만 바라보았다. 결혼식이 시작할 시각이 되자 눈물이 흘렀다. 옆을 쳐다보니 큰딸도 울고 있었다. 자식 중 제일 먼저 결혼하는 둘째 딸의 결혼식을 엄마인 내가 볼 수 없는 현실에 가슴이 미어졌다.
조금 뒤 남편 전화가 왔다. 결혼식장이눈물바다였다며 흐느끼며 말했다.
"당신 없으니 신랑, 신부, 친척들 다 너무 울어서... 이런 결혼식은 처음이다."
둘째 딸도 전화와 아무 말 없이 엄마를 부르며 울기만 했다. 아직 말이 어눌한 난 간신히 한마디만 전할 수 있었다.
"잘... 사...알...아라."
그렇게 나의 둘째 딸은 누구보다 행복해야 할 결혼식을 눈물로 치렀다. 미안하다. 내 딸.
엄마는 동생 결혼식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 아파한다. 동생은 엄마를 생각하면 지금도 자기 탓이라 미안해한다.
그렇게 둘은 서로에게 아픔을 가진채 진하게 사랑한다.
이번에 엄마가 죽을 수 있다는 의사말에 동생은 대성통곡하며 울었다. 나는 동생의 절규 섞인 울음에 더 슬피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