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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래 Jul 05. 2020

그것만이 내 세상

일상에서 겪은 이상한 이야기_18

2016년 10월 6일에 쓴 글을 재구성했습니다.


지하철 타고 가는 길에 등산객 차림을 한 할아버지 한분이 타심.

이분이 등장할 때 존재감이 어마어마했음. 

신선이나 들법한 자기 키만 한(니스칠을 얼마나 했는지) 빤딱빤딱한 나무 지팡이를 들고

원색이 곳곳에 박힌 묘한 등산복을 입고 타심.


가장 강렬한 건 소리였는데 마치 프로레슬러들의 등장음악을 연상하게 할 만큼 

사랑이 야속하더라~ 하는뽕삘 충만한 노래를 어마어마하게 크게 틀고 타심.


그분은 그 상태로 노약자석에 턱 하고 앉으심. 난 처음에 명곡 음반 파는 분 인줄 알았음.

하긴 저런 노래는 지하철보다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나올법한 노래지. 

나는 좀 떨어져 있는데도 엄청 시끄러운 걸 보면 가까이 있는 사람들한테는 진짜 힘들 것 같아 보임.


이 칸에 탄 모두가 할아버지를 쳐다봤으나 

이분은 고이 눈을 감고 시선을 거부하는 모습이 저런 소리에 잠이 올리는 없고.

마치 반탄공을 시전 하시는 듯했음. 


마침내 참다못한 아저씨 한분이 거 이어폰을 끼던가 끄던가 하시죠!라고 소리쳤음.

근데 이 할아버지는 그 말 하는 아저씨를 한번 쓰윽 보더니 그냥 다시 눈을 감아버림.

근처에 있던 아줌마 한분은 들으라는 듯 귀를 처먹어서 그런가 보지 하며 욕을 했고,

주변에서 몇 명이 뭐라고 하는 느낌이 저 할아버지가 계속 버티다간 뭔 일이 나겠다 싶었음.


방금 전 소리친 아저씨는 용기를 얻었는지 

다시 한번 거 공공장소에서 예의 좀 지키라고 또 한마디 했고

할아버지는 짜증 나는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작은 오디오를 꺼내더니 

가져! 가지라고~ 안 가질 거면 내버려두던가! 라며 오히려 역정을 내심. 

그 큰 노랫소리를 뚫고 나오는 음성이 무슨 사자후라도 지르는 줄 알았음.


모두가 예상 못한 반격에 벙쪄있을 때 귀를 처먹어서 그런가? 했던 아주머니가

나이라도 곱게 처먹어야지 하는 들으라는 혼잣말로 모두에게 각성 버프를 걸어주심.


정신 차린 모두가 각각 혼잣말들로 기를 모으는 것을 본 할아버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그 아저씨와 모두를 보면서 

아니 길에서 들을 때도 뭐라 안 하고 지하철 내려올 때도 아무도 뭐라 안 하더니 

왜 지하철 타니까 지랄들이여!라고 또 한 번의 사자후를 지르심.


하지만 나이 곱게 처먹어라 라는 버프의 효력이 아직 남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큰 효과는 없었음.

길에 있는 똥은 피할 수 있지만 내 방에 싸지르는 똥은 못 참는다!라는 무언의 혼잣말들이 원기옥처럼 모일 무렵 할아버지는 혼자 뭐라 구시렁대더니 


다음 역에서 세상이 잘못된 거라나 무슨 잘 안 들리는 소리를 내뱉고 내리심....


기를 모으던 사람들은 급작스런 할아버지의 도주에 혈도가 꼬인 듯 욕을 쏟아내기 시작함.

일부 사람들은 주화입마가 온 듯 몸까지 틀면서 분을 참지 못함... 진짜 세상에는 참신하게 미친 사람들이 많은가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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