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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치 May 04. 2018

불행의 크기


삶의 고단함은 상대적인 일일까.
얄궂지만, 삶이 버거워 징징대고 싶었던 순간들은 훨씬 더 큰 불행을 겪는 타인의 삶을 통해 그 무게를 벗는다.


2006년, 당시 고3이었던 나는 친구들과 독서실에서 새벽까지 함께했다. 이따금씩 친구 한둘과 휴게실에 모여 넋두리를 하다가 어느새 귀가시간에 가까워 공부를 하나도 안했다며 깔깔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날은, 일부러 조성한 것도 아닌데 유독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누군가가 시작한 가정사 이야기에 저절로 숙연해져 잠자코 들을 따름이었다.


이야기가 깊어져 어느새 주제는 어린시절의 성추행 경험으로 옮겨갔다. 90년대, 국민학생이었던 우리들은 얼추 비슷비슷한 성추행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다. 성추행 사건폭로에서 피해자 서지현 씨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도 '내가 뭔가 잘못한 것 같아서'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혼자만 안고있었던 과거였다.


별안간 시작된 그 고백의 릴레이는 처음의 순수함을 잃은 듯 했다. 마치 누가누가 더 불행한가를 내기하듯, 다음 순번으로 옮겨갈수록 수위와 강도를 더해갔다. 낯뜨거운 이야기를 아무것도 아닌 양 묘사하면서 허풍을 떠는 아이도 있었다.


지금은 연락이 끊겨 볼 수도 없는 친구, A도 이내 입을 열었다. 담담한 얼굴로 꺼낸 A의 경험은 경악 그 자체였다. 열아홉 여고생의 상상 범위를 넘어선 A의 이야기에 우리는 모두 침묵했다. 당황했던 것 같다. 위로의 말도, 이해한다는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벙찐 표정을 짓고있는 친구들에게 A는 큰언니처럼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너네는 나 보면서 다행이다, 하고 살아."

나는 이런 일을 겪고도 잘만 살잖아. 그러니까 너네는 더 밝게 살아.
그 말은 그런 거였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인기척보다 시계 초침소리를 더 크게 느꼈던 시간이었다. A가 직접 화제를 바꾸고나서야 우리는 뭔가에 크게 안도한 것처럼 다시 쾌활해졌다.

그날, 우리의 침묵은 결국 긍정이었다.

불행의 상대적 크기를 체감한 순간이었다고 기억한다.


씨젤리피쉬 게스트하우스. 사람들.


10년도 더 지난 이 일을 떠올린것은, 내가 스탭으로 지내는 게스트하우스, 씨젤리피쉬에서 만난 S때문이었다. 보통 게스트하우스의 파티라고 부르는것을 씨젤리피쉬에서도 운영하는데, 그 성격의 차이가 커서 ‘파티’보다는 ‘수다’라는 이름으로 간소하게 진행하고 있다.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모여 함께하는 그 자리는, 만취와 고성, 썸 대신 낯선이들 간에 깊은대화가 오고간다. 이날, 이미 잠든 일행들과 떨어져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던 게스트가 있었다.


친구들에 비해 주름이 깊었던 그 게스트, S가 서른이 되면 어떠냐고 물어왔다. 별 차이가 없다고 말한 내 대답이 시원찮았나보다. S는 현명해지고 싶다고 했다. 안좋은 일이 너무 많이 생겨서 이걸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데, 서른이 되면 좀 길이 보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직 앞자리가 ‘2’였던 그때를 돌이켜본다. 나 역시 서른이라는 나이는 안정을 혼수처럼 챙겨오는 줄로 믿었다. 기대와 달리 서른은 인생의 전환점같았던 ‘스물’때처럼 소리없이 떠나가고 말았다. 온데간데 없는 서른의 황망함 대신에, 나는 S의 말을 더 들어보기로 했다. S는 수년째 이어지는 큰 불행에 지친, 스물일곱의 젊은 기혼자였다.


어쩐지 나이에 비해 조숙했던 것은 그간의 삶에 불행이 밀도있게 들어있던 탓이었을까. 그런 일들을 감당하기엔 아직 너무 어린 나이가, 노곤함이 짙게 밴 얼굴이 안쓰러워 눈물이 났다. 어디다 말도 못하고.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막막할까.

속에 아픔이 많은 사람은 꼭 그만큼 밝은 기운을 내뿜는건지, 안타까울 정도로 밝고 씩씩한 모습이 또 가여워서 눈물. 눈물. 그냥 같이 펑펑 울고 싶었다. 다 내려놓고 실신할 때까지 울고싶었다. 힘든일이 끊이지 않는 S의 삶이 원망스러워서 그냥 악이라도 쓰고 싶었다.


몇 년이라도 더 산 내가 쓸만한 조언 한마디 할 수 있었다면, 현명해지고 싶다는 그 친구에게 그 방법을 말해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나는, 내가 상상도 해보지 못한 저 상대적 불행에 10년 전처럼 또다시 침묵하고 말았다.


네이버에 ‘서른’ 이미지 검색.


바라는 것처럼, 서른이 마법같은 혜안을 가지고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스물을 앞두고 못했고, 서른을 넘기고도 하지못한 말들은 어디에 숨어있는걸까. 마흔 언저리에 줄을 섰을까. 혹은 오십의 어깨 위에 쌓여있을까.


10년 전, 우리의 침묵은 잔인했다. A의 특별한 불행은 우리의 일상적 불행에 섞이지 못했다. 너보다 덜 불행함에 감사했던 그날의 나를 반성한다.


나는 S의 커다란 불행을 듣고 10년 전 그때처럼 침묵했다.   그러나 S가 열아홉의 A처럼 외롭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너의 아픔을 이해하려 노력했고, 네가 진심으로 행복해지기를 믿는 내 마음이 전해졌을거라 믿는다.


S의 평안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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