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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치 May 12. 2018

이별 당한게 아니고요, 내가 이별 했어요.


길을 걷다 눈물이 나고, 화장을 하다 눈물이 났다. 의식 자체가 곧 눈물로 이어짐을, 노랫말이 아니라 실화로 겪었다. 괴로웠다. 혼자가 아니라면 누구앞에서도 내보이지 않은 눈물을, 나는 엄마앞에서 홍수처럼 쏟아냈다.



너희는 안맞았던 거야.

넌 그동안 그사람을 버텨왔구나.



그제야 내가 했던 연애의 민낯을 돌아볼 수 있었다.

사랑의 이름으로 맞추고, 넘겨온 순간들이 마침내 그늘 속에서 양지로 나왔다. 나는 그곳에서 외롭고 쓸쓸했던 나를 발견했다. 견딜만한 것으로 분류되어 잊혀졌지만 완전히 소거되지 못하고, 마음 한 구석에 남았던 기억들이 거기에 있었다. 제각기 도화선을 길게 빼고 앉아, 언젠가 불이 붙을 날을 기다리는 시한폭탄의 모습으로.



30년 이상을 각자 살아온 우리가 안 맞는건 당연한 일이겠지. 이해하고 배려하며, 넘치지 않는 선에서 서로를 생각하는 연애를 꿈꾼다는 그의 말에 나는 분명 매료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표현의 농도는 다르더라도, 배려의 의지만큼은 의심하지 않았었다.



딸, 앞으로 누굴 만나더라도

헤어질때 너무 아플만큼 사랑하지는 마.



열일곱 쯤으로 기억한다. 첫사랑을 떠나보내고 눈이 퉁퉁부은 나에게 엄마가 해준 말이었다. 당시의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뜻은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스며오듯 다가왔다. 젊은 나이에 사별한 엄마가 경험으로 하는 조언이라 더 각별했을까.


이별이 믿기지 않아서 혼란스러웠던 첫 밤과 앞뒤없이 흘렀던 눈물을 기억한다. 그리고 어느새 4일차, 내 글의 한 소재로 남은 그 사람의 얼굴을 다시 떠올린다. 분명, 그는 나에게 없어선 안될 사람이 아니었다. 언제나 1순위는 나였고, 그는 그다음 몇 순위를 오락가락 했을 거였다.



인정한다. 많이 좋아했고, 사랑했다. 남보다 결코 잘난 구석없는 외모나 성격, 결코 평범하지 않은 독선적 태도까지도 그의 매력이라 믿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아픈것은 힘든것을 참아가며 그에게 맞춰왔기 때문임을, 그때 참은 아픔들이 지금 몰려온 것 뿐임을 나는 안다.


거품같은 관계였다. 이제야 정면으로 바라보게 된 우리의 지난날은, 너를 견뎌내기 위한 나의 배려로 쌓아올린 모래성같은 것이었다. 너를 향한 불안함을 잊기 위해 고심했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비록 여기에서 끝이 났지만, 나는 내가 택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 했던 노력에 떳떳하다.


이번 일을 통해 다시한번 깨달았다.

네가 몰라본 나는, 너의 보잘것 없는 사랑까지도 키워보려 노력한 좋은 여자임을.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나는 네가 내 자존을 훼손하도록 허락하지 않겠다.

나는 나에게, 그리고 내 사랑에 최선을 다했고 그런 내가 자랑스럽다.


지난 6개월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당당하게 이별을 고한다.


나는 나 스스로 빛나는 가치를 가진 사람이니까,

내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을 만날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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