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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치 Mar 28. 2018

아재인증



 겨우내 줄어든 활동량이 불어난 체중으로 경각심을 일깨웠다. 해서 근 3 전부터 하루에 일만 보를 채워 는 중이다. 미세먼지가 심하지 않은 , 또는 비교적 그런 시간을 골라 부지런히 걷는다. 익숙한 상가들이 늘어선 거리, 쇼윈도를 구경하며. 매대 , 투명한 빵봉지에 따스한 숨이 이슬처럼 맺힌  나온 빵들의 냄새를 맡으며.

 내가 주로 걷는 길은 수유도서관에서 4호선 미아역으로 향하는 골목길이다.  길을  따라 걸으면, 야구선수 봉중근을 배출해 냈다는  초등학교가 있고, 몇년은 지난듯한  바랜 아이돌의 포스터가 붙은 문방구도 있다.


 한국보다 몽골인의 특징이  뚜렷한 얼굴의 할머니가 낮은 담장에 몸을 기대고 담배를 피우는 빨간 벽돌 빌라도 빼놓을  없다.


 여기에 이따금씩  지저귀는 소리까지 BGM으로 깔리면, 한두대  지나가는 자동차의 매연도 그리 끔찍하지 않은 평화로운 동네 풍경이 완성된다.




 오늘  아침산책을 훼방 놓은 것은 저멀리서 걷고 있던 네명의 여자들이었다.  멀리 손가락만큼 작게 보이던 것이 상대적으로 빠른  보속에 따라잡혀 결국  앞을 가로막고 말았는데, 가뜩이나 좁은 인도에 사람 넷이 횡으로 늘어서서 걸으니 뚫고  틈이 없었다.



아니 너네가 무슨, 야인시대냐고.’



순간 헛웃음이 났다.  장면에 떠올린 것이 고작 ‘야인시대라니. 언제적 드라마냐.


 불현듯 회사를 다닐 적에 4-50 부장님들이 가열차게 시도하던 아재개그와 거기에 진저리를 치던 일이 생각났다. 소름돋게 듣기 싫다고 또래 여사원들과 속풀이를 하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이다.


 인도를 점유한 네명의 여장부들을 보며 야인시대를 떠올린  또한 부장님 이상으로 누군가를 소름 끼치게 하는 아재개그를 구사해 왔는지도 모른다. 여러모로  소름끼친다.





 늙지 않기 위해 열심히 피부관리를 하고, 어려보이는 화장을 하는 내가, 사람들을 만나 나는 아직 젊다고 외치는 것은 대체 어떤 모순일까. 종종  나이를 잊는 내가 본능적으로 일단 젊다고 외치고 보는 것은 ‘아재 분류되지 않기 위한 발악일까.

 늙음에 저항하는 노력과 무관하게 나이듦에 무감해지는 것은 청년층이 소비하는 문화에서 그만큼 멀어졌음을 반증하는지도 모른다.


 젊은 사람으로 살기 위해 나는 얼마만큼  기민해져야 하는 걸까. 먹고 마시는 ,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  나를 정의한다면 나는 어디쯤에 있을까. 이대로 괜찮을까. 유행에 둔감한  같은 사람이 청년으로 살기에 세상은 너무 빠르다.


2018.03.28


물결과 점점은 아재들만 쓰는거라며. 10대 말투를 배우려는 30대들의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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