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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흘람 Oct 22. 2024

운전을 파키스탄에서 할 줄이야!!

드라이버들과의 전쟁 + 장롱면허를 꺼냈다

스무살쯔음 운전면허증을 따 처음에 신나게 운전하다가 갑자기 겁이 나기도 했고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운전할 일이 없었고 필요성도 못 느껴 자연스레 장롱면허증을 갖고 있었다.


결혼한 후 시댁에서(시댁 시엄마, 시할머니 모두 매일 운하심) 왜 운전을 안 하냐는 말에 아니 운전을 안 하는 걸 이해 못 하셨고 ㅋㅋ 남의 편도 가끔 혼자 운전하기 힘들 때 내가 운전하기를 원했었다. 그러나...

나는 자신감이 없었다.


파키스탄에 오기 전에 이미 말했다시피 남의 편이 파키스탄에서 살면 좋은 점들.. 장점들을 내게 알려줬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개인 드라이버가 생긴다는 거였다.


예전 아랍 국가에서 개인 드라이버를 간접적으로 체험을 해봤지만 내 전용 기사는 없었다.


어쨌든 몇몇 기사들을 접해보고 다른 분들의 드라이버들을 직접 본 결과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며 결국은 나와 드라이버간의 합이 맞아야 한다는 거다.  특별히 잘 대해주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정말 엄격하게 대하는 분들도 있고 다양하다.


나 같은 경우는 딱히 친절하지도 않았고 최대한 예의를 차리려 했지만 결코 쉽지 많은 않았다 말하고 싶다. 왜냐면 너무 친절하게 착한 병에 걸리면 드라이버들과 갑을 관계가 바뀌어버리는 경우도 주변에서 봤다.

점점 늦게 와서 학교나 직장에 지각을 한다던지 아니면 이유 없이 안 온다던지...

나 같은 경우는 지각은 경험을 못해봤고 드라이버 1명이 갑자기 자기 친척이 불륜을 저질러 급한 불을 꺼야 한다는 말을 하고 연락두절이 되었다. ㅋㅋ


그 순간은 정말 아찔했다. 그동안 드라이버손에 이끌려 전혀 지도도 방향도 안 익히고 태워주는 데로 내려주는 데로 다녔었는데 3명의 드라이버를 3-4개월 겪은 뒤로 진절머리가 났다.


겨우 운전대로 자기들이 갑인 양 설쳐대는 게 꼴 사나웠고 2주 지나면 다들 월급을 2-3배 올려달랬다. 그리고 마지막 기사 A는 학교 주차장에서 뒷 나무를 못 봐 차가 고장이 나서 픽업 때 곤란한 적이 있었다. 행히도 그 기사는 매너 있게 도망치지 않고(많은 기사들이 도망간다 들었다.) 월급과 함께 수리비용을 다 지불하고 자기 스스로 두바이 드림을 꿈꾸며 두바이로 떠났다.

그때 당시에는 수많은 스토리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저 쓸데없는 감정소모였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2022년 1월 새해가 오기 전에 나는 새해계획 1순위로 운전을 정했다. 정말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운전의 목표는 얘들 학교 등하교였다. 다른 곳을 운전하는 건 목표도 아니었고 무조건 학교였다.


운전연수를 마음에 먹고 바뀌기 전에 바로 등록을 했다. 여러 군데가 있지만 우리는 이끄라 학원에서 도로 연수만 등록을 했다.

그전에 남편이 그나 조용한 디플로마틱 인클레이브(Diplomatic Enclave)에서 운전하는 걸 도와줬는데 정말 너무 힘들었다. 긴장이 돼서 핸들 잡는 것만도 땀이 났다. 그중에 연수를 시작했는데 긴장은 되었지만 재미있었다.

나는 장롱면허라 흰 도화지 상태에서 운전을 다시 시작한 거라 오른쪽 핸들 및 방향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수업은 1회 1시간씩 10일 치로 등록이 가능했으며 물론 선불이다. 자기가 원하는 요일, 시간을 결정하는데 문화적 차이로 정각에는 절대 선생님이 오시지 않았다. 보통 5-10분은 이해하는데 3-40분 이상도 늦으셨다.

좋은 점은 우리 집에서 출도착이 가능해서 편했다. 이런 개인적인 서비스는 여기 파키스탄이라 가능한 거 아니었을까?

선생님이 내 옆자리에 앉으셔서 계속 천천히 천천히만 외치셨던 기억이 난다. 30km였나?


내 운전의 문제점은 직진은 쉬우나 주차가 어려웠다. 그러나 선생님은 계속 직진만 가르치셨고 계속 동네만 도시길래 나는 학교를 원하니 학교로 가는 길만 계속 연습하길 원한다 했다. 그 이후로 매일 학교만 집에서 왕복했다. 내 목표였기에 너무도 재밌었고 도움이 되었다. 그분이 내게 히나라는 예쁜 파키스탄이름도 지어주셨다.

전날 태풍으로 인해 길에 나무들이 쓰러져있다

점점 운전이 재미있었고 내가 원하는 때 원하는 곳에 바로 운전해서 갈 수 있어 시간도 절약되었고 정신적으로도 편했다. 하지만 운전이 정말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는 것도 배웠다.


주변 한국분들은 아이들이 아직 어리기에 직접 운전하지 말고 기사를 써라 그리고 한국에서는 운전을 잘했는데 파키스탄에서는 절대 안 하시는 분들도 보았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운전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주차문제 빼고는 어려움이 없었다. 특히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는 대부분  주차장에 발 또는 직원 또는 기사들이 많이 있기에 주차할 때 도움을 쉽게 받을 수 있었다.

사방팔방으로 차들이 양보 전혀없이 들어온다 ㅋ

이제 운전에 익숙해질 무렵 마지막 기사인 A한테 문자가 왔다. 두바이 드림을 꿈꿨던 그가 취업이 안되고 돈이 없어 다시 돌아왔으니 기사를 구하냐는 문자였다. 그래서 내가 나는 현재 운전을 직접 해서 드라이버가 따로 필요 없다 하니 아무 일이나 자기한테 시켜달랜다.


우리는 메이드와 가드너 아저씨 두 분과만 함께 일했고 다른 직원은 필요하지도 않았다.

결론은 파키스탄에서 물론 이슬라마바드, 이슬라마바드-라호르 연결 고속도로에서만 운전한 거지만... 다른 도시에서는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특히 라호르에선...


나는 그 이후 파키스탄에서 머물 동안 계속 운전을 직접 했다. 초보 운전자가 사고 없이 끝까지 해낸 거에 뿌듯하다.

만약 독일이나 한국처럼 이슬라마바드에 지하철과 버스가 대중화가 되었더라면 과연 직접 운전까지 했을까 싶다.


내가 운전연수학원을 다닌 후에 연수차가 거리에 자주 보이는 거 같았다. 원래 관심 있으면 눈에 잘 띄니까

놀라운 점은 점점 여성 운전자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파키스탄에서 작은 희망이 보인다



PS. 참고로 연수를 마치고 신청해서 공식적으로 파키스탄 운전면허증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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