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변화의 시작 앞에선 커다란 각오가 필요했다. 처음엔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삶에 대한 의욕이 충만했다. 그 이유는 바로 시간적 자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회사에 매여 있지 않을 수 있는 자유!
물론 싱글의 삶을 누리는 이들에게는 가정 또한 자유와 반대되는 개념이기도 하겠으나, 일-가정 양립을 위해 애써야만 하는 워킹맘의 입장에선 회사에 가지 않음으로써 가정 내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아주 많다.
어쨌거나 나와 내 가정을 좀 더 살필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는 것은 내게 고무적이었다. 회사에 다니며 돈을 버는 일은 생산적이었지만, 그것을 위해 나를 깎아먹는 부분이 분명 있었다. 삶이 뒤죽박죽, 엉망진창이라고 느껴질 때도 그저 묵묵히 회사에 출근했다. 꾸역꾸역 하루를 다시 쓰면서 버티는 것만이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많은 부분이 생략되었고 또 당연했다.
아이가 아파도 열이 펄펄 끓는 것이 아닌 이상 항생제를 계속 먹여가며, 투약의뢰서에 서명을 매일 했다. 나의 출근을 위해선 응당 그래야만 했다. 출근하는 동안에는 아이의 자립을 종용해야 할 터였다. 그랬다. 그동안 나는 무급생활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꾸역꾸역 출근하고 있었다. 나는 나의 두려움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출근해야 했고, 아이는 나의 출근을 지켜주기 위해 허겁지겁 나를 따라야 했다.
이번에는 아이의 새로운 자립을 조급하게 채근하고 싶지 않았다. 기대하고 온전히 응원하고 싶었다. 조금만 더 자연스럽게 아이의 자립을 지켜봐 주고 싶었다.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기간만큼은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하면 내가 언제든 동행할 수 있는 상태이길 바랐다. 항상 아이가 나의 출퇴근에 맞춰주었다면, 이번엔 내가 아이의 등하교에 맞춰 살아보고 싶었다. 조금만 용기를 내어 무급의 생활에 맞춰 살아보면서. 나 또한 나의 온전한 자립을 이뤄내고 싶었다.
그렇게 휴직을 결정하고 나서 이 시간의 가치에 대해 남편과 대화하던 중, 남편이 장난스레 말했다. 이 시간이 얼마짜리인 줄 아느냐고. 내 한 달 치 월급에 휴직 개월 수를 곱한 천만 원대라고 했다. 내 월급 얼마 안 되는 건 맞는데... 역시 곱셈은 강력하다. 천만 원 대란 숫자를 들으니 좀 더 다른 형태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그 숫자가 뇌리에 박혀서 잊히질 않았다. 아름다울(?) 나의 휴직기간에 남편이 찬물을 끼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