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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Nov 06. 2024

이상한 셈법을 가진 그가 주식투자를 한 결과


그럼 나머지 돈으로 아빠는 뭘 했느냐면, 무려 주식이라는 걸 했다. 주식은 누군가에겐 투자가 될 수도 있지만 또 누군가에겐 투기가 될 수도 있는 것. 그 시절 내가 느꼈던 주식은 투자라는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할 수 있는 고급스러운 한량 짓에 불과했다. 책 한 권도 읽지 않던 아빠는 허구한 날 토마토 같은 주식티브이를 틀어놓고 살았다. 나는 아빠가 친척 어른들과 대화하는 모습이나 지인들과 통화하는 내용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그가 주식으로 돈을 벌 수 없을 거라는 걸. 그는 지식을 쌓아서 주식 투자를 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쉽게 돈 벌 궁리를 하는 중이었다. 이 종목이 좋다, 저 종목이 좋다 하는 말들에나 귀 기울이며. 


주식으로 돈이 불어났다한들 아빠가 그것을 정직하게 오픈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주식을 하는 이유가 재산을 불리기 위한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 해도,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은 미미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만의 이상한 계산방식을 갖고 있으며 그 계산에서 엄마와 우리들의 몫은 너무도 작았기 때문이다. 그의 이상한 셈법은 최솟값을 구할 때만 정확했다.


이런 점에서 그는 돈을 잘 다뤄서 우리를 더 나은 환경으로 인도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적은 돈에서도 이러한데, 파이가 커진다 한들 우리의 몫이 커질 수 있을까. 이미 극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아내는 엄마의 능력 아닌 능력을 보았으므로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주식계좌 잔고에 일말의 기대감도 없었다. 그리고 이십 년이 지난 지금 나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때에 비해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주 조금도. 애초에 관심두지 않았던 그의 주식 그래프의 변천사는 알 수 없으나, 가정 형편이 하한선을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다. 이것만이 분명한 현실이다.


그는 미래에 투자한다는 핑계로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되었다. 엄마의 저장강박으로 인해 쓰레기장 같던 더러운 현실에서 그는 도피한 셈이다. 자식인 우리를 위해 엄마가 쓰레기를 뒤지며 주워오고 누군가에게 받아온 그것들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취했다. 그리고 이 상태론 친구들도 못 데려오겠다며 엄마의 살림능력을 탓하는 우리의 원망에 슬쩍 입김을 더했다. 모든 것이 엄마 탓인 것처럼. 그러면서도 엄마의 추궁에 말없이 주식티브이를 들여다보고 있는 그를 보며 어딘지 기이하다는 생각을 했다.


직장인으로 사는 지금, 동료들 사이에서 주식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나도 주식을 사고팔아봤으니 그 마음 모르는 것 아니다. 다만 아빠는 그때 그 상황에서 주식을 하며 엄마를 속이지는 말았어야 했다. 많지도 않은 월급의 절반도 엄마에게 쥐어주지 않으면서 주식이라니. 형편에 어울리지도 않고 분수도 모르는 행위였다. 돈이 어디 있어서 주식을 하느냐, 이번 달에 주기로 한 돈은 어디에 썼느냐 등등 엄마가 묻는 질문들에 그는 늘 어물거리거나 얼렁뚱땅 대답했다. 변명을 하더라도 자기만의 이상한 계산법을 들이대는 아빠를 보며 나는 정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속인 게 엄마든, 자기 자신이든, 그는 정직하지 못했다.



*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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