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 Nov 12. 2024

엄마랑 왜 결혼했냐는 아이의 질문에


일주일 동안 또다시 집은 엉망이 되었다. 좁은 거실 바닥에 널려있는 종이 조각들과 완구들, 책과 뻥튀기 부스러기들, 거실과 주방이 한 공간에 있어 너저분한 식탁과 싱크대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커튼으로 차마 가리지 못한 베란다엔 건조기가 토해낸 옷가지들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매일 퇴근 후에는 씻고 씻기는 게 일이다. 겨우 먹은 저녁식사 뒤에 설거지까지 하고 나면 방으로 가서 잠시 눕는다. 하루종일 몸을 지탱해 준 허리부터 아파오기 때문이다. 방에도 책이 쌓여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집어든다. 내가 읽던 책들이다. 하루에 몇 페이지씩 읽는 책들이 소중하다. 다음날 다시 출근하기 위해선 독서나 글쓰기로 마음을 충전해야만 한다. 하루종일 엄마와 떨어져 있던 아이들은 수시로 방을 들락날락하니 진득한 독서는 어렵지만, 어디에 눈을 두든 행복하다.


그러나 책을 덮고 방을 나서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평일의 끝에 상쾌한 주말을 맞이하고자 청소를 시작했다. 그런데 싱크대에 팝콘과자가 봉지째 들어가 있다. 아이가 기관에서 받아온 팝콘을 몸에 안 좋다며 남편이 버린 모양인데, 그걸 보는 순간 화가 났다. 남편은 요리도 곧잘 하는 대신 후처리만큼은 신경 쓰지 않는 편이라 주방이 난리가 난다. 냉장고를 비우려는 의지는 알겠으나 싱크대에 아무렇게나 부어둔 음식물을 볼 때면 부아가 치밀기 시작한다. 옆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봉투 안에 버리고, 통에 있는 국물은 하수구를 중심으로 흘려보낸 다음 대충 헹궈서 놓아도 될 텐데. 고춧가루 때문에 쉽게 빠지지도 않는 김치국물을 아무렇게나 부어둬서 싱크대 바닥과 씻은 후 물 빠지게 개어둔 그릇에까지 물이 튀게 하다니. 거기에 식재료 비닐 포장지까지 넣어두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 싱크대는 자기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해그러는 걸까. 비닐은 음식물이 아니니 따로 버려달라고 했다. 깨끗한 상태로 버릴 수 있는 비닐을 구태여 싱크대에 섞어놓아 한데 뒤섞인 오물을 씻어내고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상태로 버리게 하는 건 명백히 배려 없는 처사다. 평소에 몇 번이나 부탁했던 거라서 오랜만에(?) 벌어진 일인데도 단단히 화가 났다.


"아, 치우려고 했어."


미안하다는 말 대신 치우려고 했다는 회피성 대답에 더욱 화가 났다. 평소 싱크대는 자기 영역으로 생각하질 않으니 그 말은 전혀 진정성이 없다. 사그라들지 않는 나의 화에 남편은 왜 화를 내냐는 말로 응수한다. 화가 나게 했으면서 왜 화를 내냐니... 더 화가 난다. 참을 수 없어!


남편도 한 주간 스트레스가 쌓였는지 참지 않는다. 목소리가 큰 남편에게 지기 싫어 더 큰 소리로 말하다가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반쯤 닫힌 문 너머로 큰소리가 몇 번 더 오고 갔다. 화장실에 들어가던 아이가 시끄럽다며 외쳤다. 그러고선 가까이 있던 아빠에게 천진하게 묻기를


"엄마랑 왜 결혼했어?"


아아, 이 시점에 저 질문을 하는 의도는 무엇일까. 아직 순수한 아이니까 의도는 없을 것이다. 그저 이렇게 싸우는데 과연 서로를 좋아했는지가 궁금했을 것이다. 자기도 동생이랑 자주 싸우지만 동생과의 인연은 스스로의 선택권이 없었으니까. 평소 누구랑 결혼할까 고민하던 아이가 생각하는 결혼이란 좋아하는 사람과 해야 하는 것이니까.


"어? 저번에 말해줬잖아..."


남편도 나와 동일한 마음을 느꼈는지 대답에 당황한 기색이 묻어났다. 그 뒤로 우리는 침묵을 유지했다. 아직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지 않은 걸 보니 이른 대화에 볼멘소리가 나올 것 같아서 글을 다. 여기까지 적는데 손가락이 어찌나 바삐 움직였는지 잠시 숨좀 돌려야겠다. 휴.




"아빠랑 왜 결혼했어?"


내가 엄마에게 자주 하던 질문이다. 다분히 의도성을 갖고 했던 질문이다. 저런 남자와 왜 결혼했느냐는. 혹시 아이가 그랬을까. 아이의 목소리는 천진했지만 그 질문은 혼란에서 태어난 것이 분명했다.


《내가 듣고 싶던 말, 네게 하고 싶은 말》


"아빠랑 싸우는 모습 보여주고 들려줘서 미안해. 많이 시끄러웠지? 엄마의 마음속이 시끄러워서 그만 아빠에게도 소리치고 말았어. 몸도 마음도 지치면 짜증이 나기 쉬운데, 엄마가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했어. 엄마가 아빠의 배려 없는 행동 때문에 화가 났는데, 아빠가 엄마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 더 화가 났어. 그런데 아빠도 몸과 마음이 지쳐서 엄마를 배려할 수 없었던 것 같아. 그리고 엄마아빠도 같은 공간에 있는 너희를 배려하지 못했네. 정말 미안해.


그리고 엄마는 아빠의 뒷모습이 보여서 결혼을 결심했어. 좋아해서 혼하는 것도 맞지만, 그 사람의 좋아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감싸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결혼해야 하는 거야. 그런데 살다 보니 자꾸만 잊게 되는 것 같아. 결혼은 약속인데 엄마가 자꾸 약속을 잊게 되네. 엄마는 정말 깜빡핑인가 봐. 그래도 너희를 보면 그 약속이 생각나. 그 약속을 하지 않았더라면 너희를 만날 수 없었겠지 하고. 그러니 앞으로도 그 약속 잘 지켜가도록 노력해 볼게."



이런 말들도 중요하지만 이번만큼은 행동으로 보여줘야겠다. 가장의 권위를 중시하는 남편은 내가 지는 그림을 원한다. 나는 이런 마무리가 영 마음에 들진 않지만 냉전보다는 나으리라. 그리고 아이가 좀 더 크면 어차피 알게 될 것이다. 엄마가 져줌으로써 아빠를 품어주었단 사실을. 그건 사랑이었다는 것을. 옳고 그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전 17화 감탄의 능력은 감사의 능력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