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우기도 전에 알아서 일어난 딸아이는 속이 안 좋다며 밥을 먹지 못했다. 누룽지를 끓여달래서 줬더니 한 숟갈도 못 먹고 다시 이불속으로 갔다. 그런데 배가 찌르듯 아프다며 눕지도 못하는 딸을 본 순간 결단을 내렸다. 휴가를 내기로. 이건 병원만 다녀온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오늘 하루 집에서 푹 쉬게 해야한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한 이후에 현장체험 명목 외에는 결석한 적이 없다. 즉 아프다는 이유로 수업을 빠진 적이 없었다. 평소 건강했던 딸이라서 더 놀랐던 것 같다.급박한 결단으로 없는 연차를 끌어다 쓴다고 아침부터 회사 직원들에게 여기저기 휴가 처리를 위한 연락을 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배 통증이 가라앉았는지 동생과 장난을 치며 놀고 있다.다행인지 뭔지 좀 찜찜하다.
병원에 갔더니 장염 기운이 있다고 한다.기침이 조금은 더 심해진 감기와 함께 장염에 대한 처방약을 받아 들고선,뒤늦게 오늘 하루에 대한 계획을 딸과 함께 의논해 본다. 병원 가는 김에 반납할 책을 챙겨 와서 도서관에 가는데도 아주 씩씩하다.
"너 지금이라도 학교에 갈래?"
"음.... 아니."
그래, 나라도 아니라고 하겠다. 회사 지침에 따라 출근 시간 전 휴가 상신을 위해 동분서주한 까닭에 결재는 이미 났을 것이다. 반차로 돌리겠다고 휴가 철회를 하는 것도번잡스러운 일이다. 이왕 이렇게 된 것 푹 쉬기로 했다. 엄마와 데이트를 하자고 했는데 장염이라 먹지 말란 음식들을 제외하니 영 기분이 안 난다.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쉬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어딜 데려가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도서관에만 잠시 들렀다 곧장 집으로 향했다. 내가 밀려둔 집안일을 하는 동안 딸은 비즈공예를 했다. 밥을 먹고 약을 복용한 뒤 우리는 방으로 들어갔다. 포근한 이불속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꿀잠을 잤다.
눈을 뜨니 오후 세 시. 꼭 필요할 때 써야 한다고 생각해서 아껴두었던 나의 연차가 어쩐지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딸을 푹 쉬게 했다고 생각하니 아깝지 않았다. 다음 날이 주말이긴 했지만 어른이나 꾹꾹 참았다가 주말에 아플 일이니까. 이제 조금만 더 크면 아픈걸 참고서도 학교에 가야 할 테니까...
역시나 남편은 못마땅해했다. 전화로는 상태를 좀 뻥튀기한 탓에 잔소리를 모면할 수 있었으나, 집에 와서 딸의 상태를 보고 직접 대화를 나눠보니 결석할 정도는 아니었단 걸 알아챘다. 나의 남편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아프거나 해도 학교는 반드시 나갔던 사람이다. 이 정도 아픈 걸로 학교를 빠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인하게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순간 내가 너무나약하게 판단했나 싶어 앞으로는 정말 심한 상태가 아니라면 결석은 안 된다고 못 박았다.
내가 어릴 적 꾀병을 부렸던 날이 기억난다. 엄마는 꾀병인 걸 알면서도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주었다. 초등학교 입학식과 전학 가던 날을 제외하곤 학교에 찾아오는 법이 없던 엄마였다. 그럼 전화라고 쉬웠을까. 초등학교 때부터 촌지가 만연하던 그 시절, 찾아가지도 않는 선생님께 전화를 거는 것도 쉽진 않았을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엄마가 선생님과 연결되는 그 순간이 괜스레 신기하고도 꾀병인 게 들통날까 떨려서, 통화가 끝날 때까지 이불속에서 두근두근하던 느낌이 생생하다.
그땐 내 방이랄 게 따로 없이 한 방에서 생활했던지라 통화건 식사건 독서건, 화장실 볼일을 제외하곤 모두 같은 공간에서 해결했다. 엄마와 나는 그렇게 하루종일 집에서 책을 읽고 티브이를 보고 자고 밥을 먹었다. 아빠는 멀리 건설현장에서 숙식을 하던 시기였고, 언니는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때였다. 빛도 잘 들어오지 않던 그 방에서, 컴컴하던 방이 더 컴컴해질 때까지 엄마와 둘이서 하루를 보냈던 날이 생각났다. 하루종일 이불속에 있어도걱정할 게 없던 날이었다.
《내가 듣고 싶던 말, 네게 하고 싶은 말》
"네가 아파서 눕지도 못할 때 엄마는 가슴이 철렁했어. 네가 아파서였기도 했고, 당장 출근해야 하는데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지. 그래도 엄마는 네가 먼저였기에 휴가를 내기로 했어. 이미 출근한 아빠가 휴가를 쓰고 온다고 해도 시간이 걸릴 테니까 말이야. 겨우 휴가를 올리고 나니 괜찮아진 것 같은 너를 보며 허탈하기도 했지만 다행스러웠지. 그때라도 우선 오전반차로 올려달라고 할 수 있었는데 왜 그러지 않았을까?
사실은 그날 엄마가 꾀병 부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 너를 돌보고 쉬게 해야 한다는 핑계로 말이야. 덕분에 집을 깨끗하게 했고 곧 피아노를 들일 자리도 마련할 수 있었지. 물건을 비우고 배치를 바꾸고, 그 한 공간을 내어주었을 뿐인데 마음이 어찌나 시원하던지. 우리 집 거실이 이렇게나 넓은 공간이었는지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지. 마찬가지로 마음을 조금만 비우고 나면, 조금만 바꾸고 나면 이렇게나 달라질 수 있겠구나 싶었단다.
이 공간에 들일 피아노가 비록 전자피아노일지라도, 배운 곡을 엄마를 위해 연주해 주겠다던 너의 바람을 잘 실현해 줄 거야. 엄마는 너의 어떤 연주든 감동적으로 들을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야. 너도 알다시피 엄마는 피아노를 못 치거든. 그러니까 건반 위를 움직이는 너의 손가락마저 엄마는 신기하게 바라볼 거야.
평소엔 번갈아가면서 내어주던 엄마 품도 그날은 온전히 너의 것이었지. 우리가 함께 포개어 잤던 그날의 낮잠은 네 말대로 꿀잠이었고 엄마에게는 보약이 되었어. 요 며칠 엄마를 괴롭히던 두통을 사라지게 해 주었으니까. 실컷 자고 나서도 햇살이 가득 들어오던 그날의 풍경을 기억해. 엄마의 엄마와 함께 보냈던 그날도 소중했지만, 너와 함께 한 그날도 엄마에겐 참 소중하단다. 고마워. 소중하지만 조금은 슬프고 어두웠던 그날의 풍경을 조금 더 밝은 빛으로 채워줘서. 너는 엄마에게 그런 존재란다. 엄마의 세상을 밝게 비춰주는. 엄마도 너의 세상에 그런 빛이 되어주고 싶어. 사랑해. 언제까지나. 너의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자라나길 항상 기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