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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Nov 26. 2024

보드게임카페에서 한 고백


오랜만에 보드게임카페에 갔다. 나는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 이유를 가만 살펴보면 게임규칙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좋은 수를 생각해 내는 게 어려워서인 것 같다. 게임도 결국 어떤 패를 낼지 선택하는 것인데 빠르게 판단하고 적용하는 것에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게임에서 승리의 경험이 많지 않다. 승패를 떠나 그 판에서 온전히 즐겨본 적도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애들과 하는 것이니 그나마 자신감을 가지고(?) 참여해 본다. 그런데 이 또한 먼저 이해하고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줘야 하는 입장이라는 게 복병이다.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태블릿 영상을 같이 보고 있는데도 집중력이 자꾸만 흐트러진다.


남편을 힐끗 쳐다봤다. 남편은 긴장하고 집중하려 애쓰는 나와 달리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충 보는 것 같은데도 다 이해했다. 그러고선 아이들과 나에게까지 설명을 해주고 진행을 척척 한다. 엉뚱한 패를 깔 때 이건 아니고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되는 거고... 역시 기준이 명확한 사람이 있어야 우왕좌왕하거나 힘 빠지지 않고 판이 돌아갈 수 있다.


"멋있어."


두 손을 턱에 괴고 미소를 지은 채 남편을 바라본다. 게임규칙을 열심히 설명하는 남편에게 사랑의 눈빛을 보내다 못해 고백해 버렸다. 이게 뭐라고. 그런데 남편도 기분이 좋은 눈치다. 아이들에게도 넌지시 물어본다.


"얘들아, 아빠 멋지지? 게임 규칙도 척척 이해하고 우리에게 설명도 잘해주다니 정말 대단해!"


"맞아. 아빠, 최고!"


약간 과장된 립서비스였지만, 진심에서 우러난 표현을 하고 보니 하길 잘했다 싶었다. 아이들만 칭찬을 먹고 자라나. 어른도 마찬가지다. 지난번 딸이 아빠에게 '엄마와 왜 결혼했냐'라고 물었을 때, 알콩달콩한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단순히 남편의 기분만 좋게 하는 게 아니었다. 우리 사이를 보다 단단하게 만드는 풀칠이었다. 혹은 풀칠을 했는데도 어느새 굳어버린 곳에 침을 바르는 행위였다. 다시 연결되기 위한 노력인 셈이다.




아빠는 이따금씩 우리 앞에서 엄마에게 넉살 좋게 사랑을 표현했다. 나는 그 모습이 싫지 않으면서도, 엄마의 반응을 보면서 뭔가 모순된 점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아빠에게 무뚝뚝했던 엄마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엄마의 성향이 그렇기도 했고, 엄마가 아빠에게 진정으로 원한 건 한낱 사랑표현이 아니었을 것이다. 실질적인 헌신이 없는 고백은 같잖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두 가지 정도는, 아주 가끔일지라도 표현해 줬다면 좋았겠단 생각이 든다. 집요하게 묻는 내게 엄마는 그에 대한 나름의 마음을 들려주긴 했었다. 그런데 조금 낯 뜨겁더라도 그에게 직접, 우리가 보는 앞에서 했으면 어땠을까. 그런 말들이 쉽지 않았으리라는 걸 이해 못 한 건 아니지만, 또한 그를 애초에 왜 선택했는지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그가 그녀의 삶을 아주 조금이라도 채워주는 부분이 있었다면, 엄마가 그걸 우리 앞에서 표현해 주었더라면, 그 시절 부모님이 전부였던 작은 아이의 세계만이라도 아빠는 가득 채워줄 수 있었을까. 아주 잠시잠깐의 순간이었을지라도, 끝없이 팽창하는 우주처럼 아이가 자기만의 세계를 확장해 나가더라도, 그 세계를 떠다니는 먼지만 한 기억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내가 듣고 싶던 말, 네게 하고 싶은 말》


"엄마는 이런 부분이 좀 어려워. 그런데 아빠가 쉽게 해내는 모습을 볼 때 멋있더라. 누구나 약한 부분이 있어. 그것을 채워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채워준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고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단다. 내가 그어놓은 원을 다 채워주지 못할지라도 말이야. 사람은 하나의 세계라는 말이 있어. 사람의 마음은 광활한 우주세계와도 같아서, 어쩌면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채운다는 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몰라. 대신 우리가 서로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사랑으로 채워질 거야. 그것은 마치 비눗방울을 불어 날리는 것과 같아서 금세 터져버리고 말겠지만, 그래도 괜찮아. 조심스럽게 불어넣은 그 마음이 '반짝'하고 빛났던 순간을 기억할 테니까. 그리고선 자꾸만 자꾸만 불어 날리고 싶은 그 마음까지도 우리는 기적이라 부르겠지. 우리 그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단다."



*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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