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 바보냐?'
나는 내 안의 경멸 어린 시선에 자주 얼어붙었고 그 뚝딱거림마저도 견딜 수가 없었다. 바보 같은 모습을 견딜 수가 없는데 뚝딱거리는 모습은 더 바보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좀 더 커서 그 바보 같은 모습을 아버지에게서 발견했을 때 가장 큰 배신감이 들었다. 어린 내게 자주 핀잔을 주었던 그가 내 앞에서 같은 모습을 보일 때마다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 당신은 어른이잖아요, 어린 내게 그렇게 핀잔을 주었던 당신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당신이 나를 나무랄 자격이 있었나요? 다른 사람도 아닌 당신이, 당신의 모습을 많이 닮은 나에게...
나는 속으로 이렇게 항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나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도 전에 거부하게 되었는데, 그 모습이 아버지에게 있음을 알게 된 순간부터 그를 두배로 미워하게 된 것 같다.
그가 믿음직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어린 나이에도 직감할 수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어리숙한 사람이었던가 나는 혼란스러웠다. 엄격하고 무서웠던 아버지는 어디로 가고 자주 헤매고 실수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불투명했고 그의 말은 모호했다. 횡설수설하면서도 늘 대화는 그러니까, 로 마무리지었다. 모든 걸 이해한다는 듯이. 그러나 되물어 확인해 보면 그는 아무것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질 못했다.
여기까지를 비롯해 앞전 글에서도 내가 그에 대해 이만큼이나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었던 건 그간 의도치 않게 복기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서 한풀이로 들었던 그의 과거 행적들과, 어릴 적 기억으로 남아있던 그의 모습들이 그의 특성과 함께 결부되었다. 그리고 내가 가진 특성으로 인해 현실에서 어려움을 맞닥뜨릴 때마다 나는 좌절했다. 나는 그를 보려던 게 아니었는데, 내 삶에서 자꾸만 그가 보였다.
단점으로 끝나지 않고 초자아의 공격으로 자존감까지 낮아진 내가 그것을 극복하기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무슨 이유에선지 오래도록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늘 탐탁지 않아 했던 아버지가 나의 배경에 있었다. 그 배경은 그림자같이 나와 닮아있어서 나는 두 존재를 모두 쫓아내며 도망치듯 살았다. 자꾸만 따라오는 그들에게 발길질하며. 우왕좌왕하며 따라오지 말라고, 그런 못난 모습으로 나타나지 말라고.
결국 그를 미워하는 감정은 나를 미워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나는 그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나를 사랑하겠다고 다짐하는 게 아니다. 미워할만한 이유가 있더라도 그 이상으로 미워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치 나에 대한 미움까지도 그에게 전가시켜 버리는 것 같아서다.
의뢰인으로부터 사건을 수임받는 변호사가 사회적 질타를 받는 범죄인을 변호하게 된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자신의 일은 그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만 법적인 책임을 지게 하는 일이라고. 의뢰인이 아무리 범죄자일지라도 그 이상의 형량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 변호사의 책임을 다하는 것뿐이라고. 그렇게 내려진 우리나라의 법적 형량이 적정한지 여부는 논외로 하고서, 그 변호사의 태도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내가 아버지를 미워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가. 이대로 괜찮은가. 내 안의 변호사가 묻는다. 그의 정체는 잘 모르겠다. 아버지 쪽의 변호인 같기도 하고, 내쪽의 변호인 같기도 하다. 다만 그는 이렇게 외치고 있다. 그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너까지 망가뜨리진 말라고. 네가 그를 닮았다는 이유로 그를 미워하고 있다면, 그를 미워할수록 너를 미워하는 것이 된다고. 제발 그 발길질을 멈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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