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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Nov 25. 2024

이렇게나 어린아이였다


이것은 우연일까. 엄마가 지난주에 택배를 보내왔다. 아빠가 직접 줍고 씻어 말린 은행이라며. 대봉감과 구황작물과 함께 엄마는 내게 아빠의 노고를 보내왔다. 그리고 구김이 없는 깨끗한 위생봉투에 나의 어릴 적 사진 두 장도 넣어 보냈다. 일회용 봉투도 씻어서 말렸다가 사용하는 엄마가, 나의 사진을 소중하게 보내왔다. 예전에 내가 엄마집에 갔을 때 딸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찾았던 사진이다.


볼 때마다 나의 어릴 적 모습이 생각날 정도로 나를 많이 닮은 나의 딸에게, 그때의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머리를 묶을 때마다 잔머리가 많이 나오는 것마저 딸은 나와 닮았다. 그래서 그 사진을 생각해 낸 것이다. 우리 집엔 카메라도 없었는데 교회 주일학교에서 찍어준 사진이었다.



엄마가 기억하고 찾아서 보내준 그 사진을 딸에게 보여줬더니 정말 자신과 닮았다며 인정했다. 신기하다며 우리는 함께 웃었다. 그리고 서랍에 넣어둔 게 전부다. 그런데 자꾸만 그 아이가 생각난다. 단지 카메라를 바라보았던 삼십 년 전 그 얼굴이 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다.


처음이었다. 발길질을 멈추고 선 자리에서 어린 나를 본 것이. 입술을 앙다물고 말과 마음을 삼키던 그 아이를 제대로 들여다본 것이.  고정값이었던 저 표정을 하고서 아이가 나를 바라본다. 목소리가 큰 아빠와 사나운 언니에게 자주 구박받고 핀잔 듣던 그 아이가. 잔뜩 주눅이 든 모습으로. 자신 없는 표정으로. 무엇인가 할 말이 있는 듯 없는 듯한 얼굴로. 그러나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입술에 담아서. 그전에 먼저 나의 말을 삼키려는 태세로. 그런 이 아이에게 나는 뭐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나는 그때와 같이, 그때의 이 아이처럼 입을 굳게 다물어버렸다.


언니보다 키가 크고, 대학에 가고, 변변한 직장에 가고, 부모가 되면서 그들은 점점 나를 인정해 주는 것 같았는데. 내 안에서 나보다 더 크게 자라났던 거대한 초자아는 나를 끊임없이 구박했다. 좀 커서는 언니한테 대들고, 아빠를 무시하기도 했는데. 나는, 나에게는. 단 한 번도 대항한 적 없었다. 그래볼 생각을 못했다. 나니까. 나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정작 내가 존중해야 할 것은 거대한 초자아가 아니었다. 언제나 힘없이 말없이 조용히 앉아있는 그 아이였다. 나는 그 아이에게 용기 내서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저 사진의 우측 하단에는 연도와 날짜가 박혀있었다. 95년. 고작 일곱 살짜리 어린이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 너 긴장했구나. 입술에 힘이 들어간 걸 보니. 그래서 여태껏 웅크리고 있었던 거야? 그래, 그럴 만도 했지. 이불속 발차기로 끝나질 않고 반드시 너에게 발길질을 해댔으니...


내내 웅크리고 있었을 아이를 생각하니 움츠러든 가슴이 뻐근하게 저려왔다.  몸 곳곳에 고여있던 눈물이 뜨겁고 빠르게 심장을 돌아 나왔다. 누군가 내 머리통에 빨대를 대고 쭉 빨아들인 것처럼, 나는 갑자기 물속에 잠긴 듯 코가 맵고 눈이 흐려졌다. 고작 일곱 살짜리 어린아이였다. 지금 나의 딸아이보다도 어린. 나의 딸을 생각하듯 마음이 아팠다. 나는 연민의 마음을 알고 있다. 내가 나와 닮은 이들에게 자주 느꼈던 마음이다. 그러나 그들은 어느 부분이 나와 닮긴 했어도 내가 아니었다. 나는 자기 연민이라는 말을 싫어했다. 내가 나를 불쌍히 여기는 일은 어쩐지 건강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진 속에서 보았던 어린 나는 완전한 나로 생각되지 않았다. 일평생 스스로를 학대하던 나의 초자아도 더 이상 내가 아니었다. 나는 제삼자가 되어, 어린 나와 혼자서만 앞서 커버린 초자아 사이에 섰다. 어리숙한 어린이에게 발길질을 하던 초자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외쳤다. 그만. 이제 그만하자.


이렇게나 어린아이였다. 이렇게나. 웅크리고 있느라 자라날 틈이 없었을 아이. 쑥스러운 게 아니라 경직된 거였다. 아이는 많은 상황에서 자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도.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도. 시간이 지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아이는 자랐고 변했다. 여전히 내향적이지만 필요에 따라선 분위기를 주도하기도 했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도 했다.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따지기도 하고, 회사에서 의견을 말하다가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는 보통의 어른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우물쭈물거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뚝딱거릴 때마다 나는 다시 쪼그라들었다. 쪼그라든 어른이 조그마한 아이를 나무라듯 나는 나를 내치고 내쫓았다.


- 그게 너였구나. 그럴 때마다 나는 한 번도 너를 안아주지 못했는데. 왜 이렇게 바보 같냐고, 왜 이모양이냐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해하려 들지도 않았는데... 미안해.


번도 안아주질 못했다. 이 아이와 닮은 나의 딸아이를 매일 안고 뽀뽀를 하면서도, 내 안에 늘 웅크리고 있던 이 아이에겐 손조차 내밀지 않았다. 어느새 거대해진 기준만큼이나 커져버린 어른이면서도, 그 가벼운 아이를 일으켜 세워주지도 않았다. 나는 그 얼굴을 잊고 있었다. 이제야 나는 숨어있던 그 아이를 발견했다. 사진 속 카메라를 바라보던 아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까맣고 잔머리가 부스스하고 경직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에게 나는 진심으로 사과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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