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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Nov 29. 2024

에필로그. 세 사람

나처럼 해봐요


#1.

축농증이 있던 그는 늘 코맹맹이 목소리에 큼, 하며 코를 빨아들인 뒤 카악-퉤! 침을 뱉는 버릇이 있었다. 청력이 약한 그는 목소리가 컸고, 침 뱉는 소리마저 컸다. 골목 어귀에서부터 그의 발걸음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어깨를 펴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길을 걷다 침을 뱉던 장신의 사나이.


#2.
그녀는 도도한 표정으로 쇼윈도에 비친 실루엣을 힐끗 흘기며 길을 걷는다. 홀로 교양 있는 척 하지만 신경 쓰지 않으면 어느새 팔자걸음으로 걷고 있다. 익숙하지 않은 길에서는 지도를 보며 걷기 바쁘고, 동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멍 때리느라 일관성 없는 스텝의 여자.


#3.

입술을 말아 넣고 앙다문 채 서 있는 아이. 뭐라고 말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답답하고 사람들도 답답하게 했다. 뛰다 걷다 자주 넘어진 탓에 무릎은 성한 날이 없다. 피딱지가 겨우 없어지면 멍이 앉아있다. 어디에 부딪혀서 멍들었냐 물으면 늘 모르겠다고 대답하던 어리숙한 아이.




마음이 급해 몸을 앞세워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도 어딘가에 부딪히거나 방향을 놓쳐 다시 멈칫하게 되는 그 순간에 나는 아버지를 만났다. 헤맬 때면 가만있어 봐, 혼자서 중얼거리며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의미 없는 고갯짓만 반복하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모습이 내게서 보일 때마다 나는 늘 불편하고 불쾌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마음을 가다듬고 그에게 말을 건네고 싶다.

"여기에요, 아버지. 저 따라오시면 돼요."


그와 함께 걷기로 하고 발걸음을 뗀 순간, 그와 나의 사이에 서 있던 작은 아이가 보였다. 입을 앙다물고 눈만 깜박이는 그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생각이랄 게 없는지도 모른다. 아이는 배우는 중이다. 말도, 생각도, 행동도, 마음도. 자신 주변에 떠다니는 것들을 먼저 삼키는 중이다. 그렇다면 내가 알려줘야지. 나도 아직 모르는 것이 많고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많지만, 배워서 알려주면 되겠지. 처음엔 누구나 서투를 테니까. 아이가 삼키고 소화하는 동안 나는 기다려주기로 했다.


쑥스럽다기보다는 긴장한 하고 경직된 것 같기도 한 아이에게 나는 노래하듯 말을 건넨다.


"나처럼 해봐요,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나의 몸짓에 아이는 슬몃 미소를 짓는다. 아이의 깨진 무르팍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가 넘어져 다치지 않게 천천히 걷는다. 아이의 속도에 맞춰서 한걸음, 두 걸음. 아이는 나를 따라오며 마침내 앙다문 입술을 열었다. 아이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러나 분명하게 말했다.


"아이 참, 재미있구나."





이번 연재는 시작함과 동시에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무엇이 저를 그리 조급하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장이라도 돌아가실 수도 있는 그를 향한 마음이었을까요. 그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돌아보니 평소에도 그는 저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었습니다. 늘 의식하고 있었던 그를 제자리에서 뒤돌아보고 대면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늘 그렇듯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홀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많은 분들의 위로와 응원에 힘입어서 연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불편한 부분도 있었을 텐데 애써 읽어주시고 마음 써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2024. 11. 29.
연재를 마쳐서 기쁜 조이 드림.


*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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